창작은 회피하고 싶을 정도로 귀찮다. ‘재밌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 /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상담

글/ 카레자와 카오루
‘2차 창작해 보고 싶다’는 이유로 창작을 해도 괜찮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열정이 부족한 것 같아요’, ‘진지하게 하는 분들께 죄송해요’라며, 정작 그리기보다 그리지 않을 이유만 잔뜩 창작해 내고 있는 걸 보면, 솔직히 제가 뭐라고 조언드려도 결국 그리진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에요. 왜냐하면 창작이라는 건, 온갖 핑계를 대서라도 회피하고 싶을 만큼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죠.
저 역시 마감, 무엇보다 생계 압박이 없다면 그리지 않을 거예요.
원작에서 결혼식조차 나오지 않은 내 최애 커플의 결혼식을 어떻게든 실현하고 말겠다는 열정이 있거나, 혹은 정말로 생업이 달려 있지 않은 이상,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긴 정말 어렵죠.
게다가 얼핏 우유부단해 보일 수도 있는 당신의 태도도 사실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으로 보면 굉장히 건강한 편이에요.
저 같은 집순이 찌질이조차 ‘유루캠△’을 보다 보면 캠핑이 재밌어 보이고, 심지어 살짝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거든요.
그렇다고 실제로 일어나서 캠핑을 나가는 건 아니에요. 그냥 의자에 엉덩이가 용접된 상태로 그대로 남아 있죠. 게다가 내가 진짜 캠핑을 해봤자 재미없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차피 안 할 걸 알면서 시뮬레이션만 해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고, 오히려 소풍 전날 밤이 제일 신나는 것처럼, 실제로 하지 않고 상상만 하는 편이 더 재밌을 수도 있어요.
괜히 실제로 시작했다가 ‘벌레 극혐!’, ‘여고생 친구도 없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여고생도 아님’ 같은 현실에 부딪히면 캠핑은커녕 유루캠조차 예전처럼 순수하게 못 즐기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 지금은 억지로 창작을 시작해서 ‘생각보다 별로였네’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보다는 ‘왠지 재밌을 것 같아’라는 상상을 하면서 머릿속에서 오락가락 맴도는 지금 이 상태가 어쩌면 당신에게 딱 맞는 ‘창작의 즐기는 방식’ 아닐까요?
창작하고 싶어지는 작품을 만날 때까지 불씨는 그대로 간직하기
‘이렇게 맥 빠진 상태를 계속 끌고 가는 건 싫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아마 지금의 이 모티베이션으로 억지로 뭘 그리기 시작해 봤자 ‘1페이지 밑그림만 남기고 나머지는 텅 빈 클립 스튜디오 파일’이라는 디지털 잉여물만 만들어질 거고, 의욕은 거기서 완전히 꺼져버릴 거예요.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처럼 미적지근하게 불씨만 남겨놓고 있는 상태로 두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라요. 지금 불씨가 살아 있는 이상, 언제든 불이 확 붙을 가능성은 있잖아요.
저도 중학생쯤에 ‘동인지 만들어서 행사 같은 데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상태로 20년 가까이 축축하게 젖은 채로 지내다가, 어떤 작품을 계기로 갑자기 불이 붙었어요. 그렇게 서른 중반에 처음으로 동인지를 완성했고, 첫 행사 참가도 했죠.
그 무렵 저는 이미 만화가였고, ‘만화라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도 낮엔 회사 다니고, 일로도 만화를 그리고, 틈틈이 동인지도 만들었어요.
이처럼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누가 좀 꺼줬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타오를 수도 있으니 언젠가 그런 작품을 만나게 될 날을 위해, 지금은 그 불씨를 잘 간직해 두세요.
그건 그렇고, 유루캠을 보고 ‘캠핑 재밌겠다’고 생각하는 건 충분히 이해되지만, 이 창작 고민 칼럼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지옥 같은 고민’을 짊어진 창작자들이거든요. 그런 이 칼럼을 보고 ‘창작도 재밌어 보이네’라고 느끼는 건, 마치 험난한 산세로 유명한 핫코다산을 보고 겨울 산악 등반에 관심 가지는 것만큼이나 미스터리한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도 만화가가 되기 전에는, 지금은 질색하는 ‘마감’조차도 뭔가 만화가다워서 멋지다고 생각했었어요.
어쩌면 당신은 창작 그 자체보다는, 창작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희로애락의 과정에 동경을 품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목적이라 해도 괜찮아요. 저도 만화가가 되고 나서야 사실 만화 그리는 것 자체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래도 원고를 다 끝낸 뒤에 오는 성취감, 작품에 대한 칭찬, 그리고 입금되는 원고료는 지금도 아주 좋아해요.
다만 이런 ‘희로애락’은 대부분 작품을 끝낸 뒤에야 따라오는 보너스들이죠. 그러니 일단 뭐든 좋으니 한 작품을 끝까지 완성해서 pixiv 같은 데 한번 올려보기까지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창작 자체는 별로 재밌지 않아도 완성했을 때 오는 성취감이나 ‘좋아요’나 감상 댓글이 기뻐서 그것 때문에 창작에 빠져들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아니면 ‘기껏 고생해서 올렸더니 아무도 안 봐줘요’ 같은 새로운 고민이 생겨서, 이 칼럼에 나오는 창작자들처럼 지옥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될지도 모르죠.
혹은 ‘그냥 한번 그려본 건 작품이 내 인생작보다 더 반응이 좋다니…’ 처럼 또 다른 창작자의 멘탈을 흔들 수도 있고요.
창작은 결국 이런 지옥의 몬스터들이 서로 발목 잡는 세계라서 ‘재밌어 보인다’는 생각만 하면서 거기 머무르는 것도 사실은 꽤 행복한 일이에요.

이 시리즈가 단행본으로!
인기 시리즈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 상담’이 ‘오타쿠의 즐거운 창작론’(문학춘추 출판)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화 되었습니다!
‘원작을 무시한 2차 창작이 걱정돼요’, ‘마이너 장르라 독자들이 별로 없어요’, ‘40대면 동인 행사 그만둬야 할까요?’, ‘최애를 죽이고 마는 모순과 고뇌’ 등 인기 상담은 물론 신작에 대한 고민까지 담겨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