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쁠 때 보면 기쁘게, 슬플 때 보면 슬프게’ 일러스트레이터 나츠메 에리가 추구하는 섬세한 표정이란
인터뷰/ 하라다 이치보
일러스트레이터 나츠메 에리 님의 개인전 ‘Fleurir’가 도쿄 오모테산도에 있는 ‘pixiv WAEN GALLERY’에서 2024년 4월 3일(수)까지 개최됩니다. 동점에 맞춰 그려낸 키 비주얼은 물론 오리지널 작품부터 과거 판권 작품까지 지금까지의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입니다.

나츠메 에리 님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그림체나 그리고 싶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하는데요. 그런 나츠메 에리 님께 현재와 과거의 일러스트 트렌드, 표정에 대한 신념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취미 활동에서 자연스럽게 프로의 길로
── 예전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프로를 지망하신 건가요?

아뇨, 전혀 아니에요. 중학생 때까지 친구와 노트에 그림을 그리곤 했지만 고등학교 입시 때 일러스트를 그만둬 버렸죠.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오니 뭔가 취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빠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그림일기를 저도 너무 좋아했는데, 그 동경심에서 저도 그 블로그에서 그림일기를 시작했죠.
── 그럼 미대에 다니거나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적은 딱히 없는 건가요?

네. 매일 블로그에 그림을 올린 게 결과적으로 연습이 되었죠. 여러 작가분의 일러스트를 보고 흉내 내거나 인터넷이나 잡지에서 How to를 찾아보면서 계속 독학했어요.
── 프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 책임감이 강하시네요…!

책임감이라기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감정이었어요. 물론 첫 외주가 기쁘기는 했죠. 같은 잡지에 게재된 다른 작가분들의 일러스트가 하나같이 너무 훌륭해서 ‘나도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강했어요.
── 처음부터 프로를 지망한 게 아니라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프로가 되신 거군요. 그럼 ‘일러스트로 먹고 살 수 있겠다’라고 느낀 건 언제부터였나요?

동인지를 한 달에 한 번 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전업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이 정도라면 먹고살 수 있겠다’ 보다는 ‘이 정도로 좋아하면 할 수 있겠다’ 같은 느낌이었죠.
── 일을 하면서 동인 활동을 병행하셨다고 하셨는데, 원래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일러스트와 관련 있는 업계였나요?

아뇨. 그냥 평범한 아르바이트였어요. 여러 사람과 만나는 게 좋아서 당시엔 접객 아르바이트만 주구장창 했었죠. 그러니 일러스트는 정말 제 인생에 큰 전환점이라 할 수 있어요.
한 장의 그림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 현재 작업 환경을 알려주세요.

Wacom의 32인치 액정 타블렛이랑 Razer Tartarus Pro의 왼손용 키패드, 소프트는 기본적으로 ‘SAI2’를 쓰고 있어요. 윤곽선을 따는 등 그때그때 용도에 따라 ‘CLIP STUDIO PAINT’도 쓰고 있죠.
── 일러스트를 그릴 때 어떤 과정에 가장 시간을 들이시나요?

좋아하는 작업이라 일부러 더 시간을 들여 집중하는 작업은 채색 작업이고, 너무 힘들어서 시간이 걸리는 건 선화 작업이에요. 기본적으로 러프는 대략적인 분위기를 떠올리며 가볍게 그려요. 그래서 선화로 디테일을 살려 나가는 게 엄청난 막노동이에요(웃음).

개인전 메인 비주얼 러프

선화
── 그림을 그릴 때 특별히 신경 쓰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캐릭터의 표정이에요.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인상이 변하도록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하고 싶어요. 기쁠 때 보면 기쁘게, 슬플 때 보면 슬프게 보인다면 마치 작품이 하나가 된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표정의 미묘한 뉘앙스를 의식하고 그리시는군요.

‘그림자 덕후’라 사진이 좋아요
── 지금까지 작품 중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트레이딩 카드 게임 ‘카드 파이트!! 뱅가드’에서 담당한 레인디어라는 여자 인어 캐릭터 일러스트에요. 감사하게도 신작이 나올 때마다 레인디어의 일러스트를 담당하게 되어서, 처음엔 바닷속에서 혼자 노래하던 그녀가 점점 가희로 성장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게 되는 스토리를 개인적으로 담아낼 수 있었어요.
©bushiroad All Rights Reserved.

── 그림 연습을 위해 평소에 습관적으로 하는 게 있나요?

SNS 사진이나 일러스트 자료용 사진집까지 아무튼 사진을 많이 봐요. ‘이 근육 주름엔 그림자가 이렇게 떨어지는구나’하고 공부가 되거든요. 사실 제가 그림자를 엄청 좋아해요. 예전에는 캐릭터 얼굴에 그림자를 넣지 않는 게 트렌드였지만 요즘엔 그림자를 끼얹어도 괜찮은 분위기라 기뻐요. 역광으로 사람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걸 정말 좋아하죠(웃음).
── 그림자 덕후 같은 느낌인가요?

앗, 말해주셔서 깨달았어요! 저 그림자 덕후네요(웃음).
── 그림자 그리기 어렵지 않나요? 특히 피부 위에 드리운 그림자를 매력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몰라 어둡기만 하거나 갖다 붙인 것 같은 느낌이 나기 쉽잖아요.

그림자를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인다면 아마 피부색과 그림자 색이 맞지 않는 걸지도 몰라요. 화장할 때도 웜톤 피부에는 푸른빛 핑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들 하잖아요. 무심코 ‘그림자는 어두운색’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 그림의 배경이나 햇빛 세기에 따라 그림자 색은 변해요. 시험 삼아 좋아하는 작가분의 일러스트에서 그림자를 스포이드로 찍어보시면 어떤 색이 피부에 어울리는 색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피부와 그림자의 균형을 잡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
미소녀 일러스트도 리얼의 시대로
── 과거와 현재 작품을 비교해 보면 그림체 변화가 꽤 커서 놀라운데요. 자연스럽게 바뀐 건가요? 아니면 트렌트에 맞춰서 의식적으로 바꾸신 건가요?


©산케이 신문사/나츠메 에리
── 일러스트 트렌드가 어떻게 변했다고 느끼시나요?

굉장히 ‘리얼’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그림자 색을 밝게 하거나 매트한 질감으로 인형처럼 그리는 걸 선호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근육이나 골격을 고려해서 그림자를 넣고 리얼함과 미소녀 일러스트다운 귀여움 사이의 균형을 고려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미술적인 작풍이나 미소녀 일러스트 작풍이 별로 겹치지 않았는데, 지금은 미술의 기초를 익히신 분들이 미소녀 일러스트를 그리고 계셔서 더 설득력 있는 작품이 된 것 같아 감동이에요. 저도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 그렇군요. 하지만 작품 하나당 소요되는 시간은 더 늘 것 같아요.

맞아요.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일러스트에 요구되는 섬세함이나 퀄리티가 현저히 높아진 게 아닐까요? 제가 예전에 대량의 외주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드는 공정이나 시간이 훨씬 적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 스케줄 관리나 일하는 방식도 바뀌셨나요?

한때는 매일매일이 마감일 정도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작업량이었어요. 한동안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은퇴를 생각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그릴 수 없는 지경이 되더라고요.
‘지금의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싫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전부 그만두고 영화를 보거나 사람들과 수다를 떨면서 조금씩 기력을 회복했죠. 그런 경험이 있어서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어요.
잡담 방송 덕분에 다시 그림 앞으로
── VTuber로 방송도 활발히 하고 계시죠.

방송을 하면 무조건 컴퓨터 앞에 앉게 되잖아요. 그러면 손이 심심하니까 잠담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러스트 작업도 하게 되는 거죠(웃음). 방송이 저를 책상 앞에 묶어두는 느낌이에요. 응원해 주시는 분들의 반응을 바로바로 볼 수가 있어서 굉장한 동기 부여도 되고요.
── 나츠메 님 이외에도 ‘일러스트레이터 겸 VTuber’가 많아져서 이젠 거의 일반적인 활동 형태가 된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수다를 떨고 싶은 일러스트레이터는 분명 많을 거예요. 하지만 비밀 유지 의무가 있어서 그리고 있는 걸 보여줄 순 없죠. 잡담 방송을 하게 되면 화면에 비출 게 아무것도 없어서 작업 중에 계속 뭔가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Vtuber의 몸이 된다면 작업에 집중한다고 해도 잠깐 고개를 흔들거나 몸을 흔들면서 시청자들을 시각적으로 즐겁게 해드릴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VTuber라는 형태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잡담 방송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해요. 나츠메 에리는 말을 안 할 때도 몸은 시끄럽다는 걸 시청자분들께 이미 들켰을걸요(웃음)
개인전은 ‘여러 모습의 나를 섞어놓은 공간’
── YouTube 채널 4주년 기념 다음 날부터 개인전 ‘Fleurir’가 열렸죠.

방송 시청자분들이 ‘4주년 기념으로 개인전도 가볼까’라고 생각해 주실 지도 모르고, 반대로 저를 일러스트레이터로 인식하시는 분들은 ‘4주년이구나’하고 방송에 흥미를 느껴주실 지도 모르죠. 정말 우연이지만 결과적으로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타이밍에 개최하게 되어서 정말 기뻐요.
── 이번 개인전의 볼거리를 알려주세요.

최근 작품뿐만 아니라 예전 작품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제가 그리고자 하는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시기에 따라 그리고 싶은 것이 계속 변해갔고, 그게 좋은 자극이 되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어요.
또 개인전에 어울리는 감동적인 그림이나 호화로운 그림도 있지만, 엉뚱한 인간이 즐겁게 그림 그리는 분위기도 함께 느껴 주시면 좋겠어요(웃음). 다양한 저의 모습을 섞어놓은 공간에서 재밌는 것, 예쁜 것, 조금 이상한 것까지 모두 즐겨 주세요.



── 키 비주얼도 인상적이에요. 말 그대로 아까 말씀하신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인상이 변하는 미묘한 뉘앙스의 얼굴’이네요.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에 물과 꽃, 제가 그리고 싶은 걸 다 담았어요. 두 번째 일러스트집 ‘des fraises’의 초회 한정판 커버 일러스트가 비교적 현재의 방향성과 유사한 작품인데요. ‘지금의 내가 같은 각도에서 더 깊게 파고들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라는 생각으로 그린 게 이번 키 비주얼이에요. 당시 그리고 싶었던 것과 지금 그리고 싶은 것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느껴주시면 좋겠어요.

── 굿즈도 정말 다양한데요. 특히 추천하고 싶은 게 있나요?

예전부터 그려온 오리지널 캐릭터 ‘가소린’ 쿠션이요. 팬분들이 계속 리퀘스트했던 굿즈이기도 하고 저도 너무 갖고 싶은 굿즈예요. 가장 기대되요.


그리고 레이어드 그래프(캔버스 보드에 캐릭터 등을 인쇄한 아크릴 패널을 겹쳐 입체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항상 해보고 싶었어요. 담당자분이 ‘이런 거 어때요?’하고 샘플을 보여주셨는데 저도 모르게 ‘이거 만들어보고 싶었어요!!’라고 소리 질러 버렸지 뭐예요(웃음). 마음에 드는 일러스트로 만들어 주셔서 무조건 방에 걸 거예요!

전시된 일러스트 중 왼쪽 첫 번째 줄과 두번째 줄 위에서 두 번째까지가 레이어드 그래프.


── 마지막으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 등 앞으로에 대해 알려주세요.

4월 3일(수)까지 개최! 나츠메 에리 개인전 ‘Fleurir’
pixiv와 트윈 플래닛이 공동 운영하는 갤러리 ‘pixiv WAEN GALLERY’에서 나츠메 에리 개인전 ‘Fleurir’가 2024년 4월 3일(수)까지 개최됩니다.
직접 제작한 키 비주얼은 물론 오리지널 작품 및 과거 판권 작품을 포함한 작품 약 80점을 전시, 나츠메 에리 님의 지금까지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구성으로 꾸몄습니다. 엉뚱함과 장난기 넘치는 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개최 기간: 2024년 3월 15일(금)~2024년 4월 3일(수)
입장 무료
장소: 도쿄도 시부야구 진구마에 5-46-1 TWIN PLANET South BLDG. 1F
영업시간: 12:00~19:00
일부 굿즈는 WEB에서도 구입 가능!
BOOTH에서 개인전 굿즈 일부를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나츠메 에리 님이 추천하는 ‘가소린’ 쿠션, 레이어드 그래프 등 다양한 굿즈가 준비되어 있으니 꼭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