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제작 과정을 해설! 일러스트레이터 파죠보레의 작품에 깃든 아름다운 빛 표현의 뒷이야기
pixiv에서 활약하는 전 세계 아티스트를 인터뷰하는 ‘Artist's Spotlight’.
일러스트 제작 과정과 디테일에 담긴 집념, 크리에이터로서 한 단계 성장해 나가는 방법에 다가가는 시리즈입니다!
오늘은 한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파죠보레 님께 최근 작품 제작 뒷이야기부터 창작에 임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마인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파죠보레 님의 활동과 일러스트 소개
──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 파죠보레입니다. 대표작으로는 hololive 소속 ‘ReGLoss’의 키 비주얼이나 앨범 재킷 디자인 등이 있고, 개인 활동으로는 동인 앤솔로지 ‘성간여행’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주로 캐릭터 디자인과 일러스트 두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일러스트 제작 업무가 메인이 되었네요. 빛을 활용한 표현을 강점으로 삼고 있다 보니 일러스트 의뢰를 받을 기회도 많은 편인 것 같아요. 캐릭터에 맞춰서 그 캐릭터가 실제로 그곳에 존재하는 듯한 배경이나 상황을 그려내면서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일러스트 제작 과정 대공개!
── 최근에 그리신 작품 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드는 작품에 대해 알려주세요.

'Reflection'이라는 작품이에요. 겨울이라는 계절에서 느껴지는, 쓸쓸하면서도 아련한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노력했어요.
파죠보레 님이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
── 이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나, 어떻게 영감을 얻으셨는지 알려주세요.

제작일을 보니 11월쯤이네요. 마침 날씨가 서늘해지기 시작한 시기라, 자연스럽게 그 계절감을 그림에 담게 된 것 같아요. 당시에는 빛의 반사나 질감 표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던 터라 그 과정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죠. 유리에 상이 비치는 원리를 이해하게 된 게 무척 즐거워서 곳곳에 유리 질감을 담아보기도 했어요.
── 이 작품이 특별히 마음에 드는 이유를 알려주세요.

제가 생각하는 겨울의 이미지를 형태로 잘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배경에 쓰인 유리나 금속의 차가운 질감과 캐릭터가 입고 있는 스웨터나 모자의 따뜻한 질감이 대비를 이루도록 표현한 점이 마음에 들어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도 의도한 대로 그려졌고요.
── 이 작품을 그리는 과정에서 가장 즐거웠던 공정은 무엇이었나요?

빛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역시 마무리 단계의 보정 작업이 가장 즐거워요. 특히 모자 부분에서 울 소재의 질감에 따라 빛이 은은하게 번지는 느낌을 레이어 효과로 표현할 때가 재미있었어요. 돌이켜보면, 빛이 번지는 듯한 표현은 제 그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 것 같아요.
그 외에 마음에 드는 보정으로는, 모든 채색을 다 마친 뒤 포토샵의 렌즈 블러 효과를 활용해서 거리감을 주는 과정이에요. 렌즈 블러는 단순한 블러 효과와 달리 마치 실제 카메라에서 초점이 맞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거든요.
▼제작 과정 특별 공개! ‘Reflection’이 완성되기까지








──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공정은 어떤 부분이었나요?

유리에 비친 모습을 표현하는 데 마땅한 효율적인 방법이 없어서 처음부터 새로 그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같은 캐릭터를 두 번 그려야 했어요. 한,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앵글을 잘 살리고 싶었기 때문에, 반사된 면의 투시도 계산해 가며 그려야 했죠. 사실 ‘정확히 이렇게 비칠 것이다’라고 철저하게 계산했다기보다는 감각에 의존해서 그린 부분이 컸지만, 어쨌든 공간감을 표현하는 작업이라 역시 쉽지는 않았어요.
── 특별히 공들여 표현했거나, 의식해서 그린 부분을 꼽자면 어디인가요?

따스한 니트의 질감과 모자의 부드러운 울 소재를 표현하는 데 공을 들였어요. 어두운 영역을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 단순화하고, 그로 인해 빛을 받는 면이 더 강조되도록 신경 썼습니다. 당시에는 사실적인 질감을 추구하는 것도 좋아했는데, 그것을 그림 안에서 회화적으로 어떻게 녹여낼지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표현하고 싶은 목표’에 맞춰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
── 파죠보레 님은 작품의 포인트가 되는 요소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하시네요. 이런 디테일 표현을 완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시나요? 작품에 담는 스토리 구상에 대해서도 알려주세요.

그림의 스토리나 모티프를 정하는 방법은 딱히 정해진 순서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표현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거나, 직접 시도해 보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 같아요. 뭔가 특별한 영감이 어느 순간 갑자기 내려온다거나, 그것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이 있다기보다는, 평소에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것 같아요. 외주 작업의 경우에는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며 맞춰가는 과정이 있지만, 개인 작업은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바탕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과정을 설명하는 게 쉽지는 않네요(웃음).
그래도 굳이 꼽자면, 아주 급한 작업이 아닌 이상 작은 섬네일(러프 스케치)을 만드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괴로운 건, 머릿속 이미지와 실제로 그려낸 결과물 사이의 간극이 클 때예요. 하지만 미리 작은 사이즈로 섬네일을 만들어 두면, 내가 어디까지 구현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어요. 크기가 작다 보니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효율적이고, 그림 연습도 되기 때문에 완성작이 납득할 만한 퀄리티로 이어질 확률도 높아지죠. 예전에는 왜 화가들이 같은 그림을 굳이 두 번이나 그리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비효율적이지 않나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에는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디테일 표현은 그 후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같은 금속 질감이라도 차갑고 미래적인 느낌을 주고 싶을 때는 대비를 강하고 날카롭게,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는 대비를 낮추고 면도 한층 부드럽게 표현해요.
개인적으로 기술이란 ‘표현하고 싶은 목표’에 맞춰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저 막연하게 ‘잘 그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 그것이 좋은 그림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취향이 세분화된 시대, 그래서 더욱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 크리에이터 활동을 지속하며 수익을 창출하거나, 팬분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실천하고 계신 본인만의 브랜딩 방법이 있나요?

막 프리랜서가 되어서 성장에 필사적이었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방향성이 꽤 달라졌어요. 처음에는 어쨌든 많은 사람에게 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이름을 알려야 한다는 조급함이 컸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것이 있었고, 당시에는 인기 장르의 팬아트를 그리는 것이 저 나름의 브랜딩 방식이었죠.
지금은 인지도도 중요하지만 ‘pixiv나 X에서 나를 찾아볼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저만의 특별한 감성을 더 갈고 닦아야 하죠. 설령 예전보다 반응이 줄어든다 해도, 새로운 표현을 찾기 위해 과감하게 도전해 보고 싶다는 것이 요즘 작업 기준이에요. 모두가 하나의 큰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각자의 취향이 세분화된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더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커졌어요. 이어서 말씀드릴 ‘성간여행’ 역시 그런 취지에서 탄생한 프로젝트였습니다.
── 별들의 왕래가 자유로워진 미래 세계관을 그리는 앤솔로지 화집 ‘성간여행’의 주최를 맡으셨는데, 계기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알려주세요.

시작하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했어요. 오리지널 작품으로 개인지를 내고 싶었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았고, 그렇다면 앤솔로지 형식으로 해보자고는 생각이 떠올랐죠. 다른 분들과 함께 작업하면 혼자 그리는 분량이 적더라도, 책으로서의 분량은 만족스러울 거라고 판단했거든요. 물론, 당시에는 주최자가 감당해야 할 일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런 선택을 해버렸지만요……(웃음).
그래도 팀원들과 힘을 합쳐 세계관을 구축하고, 힘들 때는 분담해서 해결해 나가는 경험은 혼자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귀중한 경험이었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힘을 합칠수록 책의 퀄리티가 높아지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어요.
전용 X 계정을 통한 홍보부터 세계관 설정, 책 구성까지 모든 요소를 멤버 전원이 함께 만들어 갔어요. 우리가 좋아서 작업한 오리지널 작품에 이렇게나 큰 호응을 보내주실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앞으로도 창작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 준 큰 희망이 되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과 독자분들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제 그림을 봐주시는 여러분, 항상 감사합니다! 멋진 그림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제 그림을 찾아 주시고, 좋아해 주신다는 사실이 제게는 기적처럼 느껴질 만큼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최근에는 일로 바쁜 시기가 이어지면서 개인 작업에는 좀처럼 손을 대지 못했지만, 2026년에는 더 많은 오리지널 작품을 여러분께 선보이고 싶어요.
또 현재 강사로 활동하면서 학생들에게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주눅이 들고, 그림 그리는 게 힘들다’는 고민을 자주 들어요. 확실히 SNS나 인터넷 영향으로 기술적으로 뛰어난 분들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그만큼 시장 규모도 커졌고, 활동할 수 있는 방식이나 무대 역시 다양해졌다는 긍정적인 면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모든 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즐거운 마음으로 오래도록 그려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 파죠보레 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