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공식파인지, 드림인지, BL인지 초반에 파악하는 방법은? /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상담

글/ 카레자와 카오루
상대방이 공식파인지, 드림인지, BL인지 초반에 구별하는 방법은?
우선 ‘초반에 구별해내고 싶다’는 발상 자체를 내려놓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병처럼 조기에 발견해야 하는 것도 있죠.
병을 빨리 발견하려면, 설령 처음 보는 의사라 해도 여러 가지 민감한 질문에 답해야 하고, 대변이나 소변을 제출하고, 몸을 드러내고, 심지어 항문으로 내부를 들여다보이는 일까지 감수해야 하죠.
부끄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의사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왜 내 항문을 보는 의사 쪽의 멘탈을 나보다 먼저 걱정해 주는 거지?’ 하고 묘하게 납득이 안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사람을 짧은 시간 안에 깊이 알려고 하면 지나치게 직설적인 질문이나 집요한 관찰처럼 상대에게 실례가 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상대가 거리를 두게 되어 오히려 답은 더 멀어지게 되겠죠.
병원 검진이라면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니 만난 지 2분 만에 하루 소변 횟수를 묻는 의사에게 ‘이 사람 거리감 이상하네’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오타쿠 유형 판별’에서 그걸 그대로 하는 건 너무 위험해요. 애초에 그렇게까지 빨리 알아낼 필요도 없고요.
미리 파악하지 못해서 ‘좋은 뜻으로 드림러에게 해당 캐릭터의 BL 창작을 선물하는’ 생명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애초에 상대의 지뢰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창작물을 선물하는 것 자체가 이사 인사로 수제 오브제를 들고 가는 것만큼이나 감각이 어긋난 행동이에요.
결국 ‘지뢰를 밟는다’는 사고는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인 와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겠죠.
상대와 어느 정도 친해질 필요가 있다
이제는 인터넷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양지든 음지든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가볍게 ‘만화나 애니메이션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오타쿠들도 이제는 다시 한번 ‘거리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시기가 온 걸지도 모르겠어요.
애초에 요즘 시대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말은 예전 식으로 치면 ‘취미는 독서와 영화 감상입니다’와 비슷해서, ‘지금 당신과의 관계에서 내가 공개할 수 있는 사적인 정보는 이 정도까지입니다’라는 분명한 선 긋기일 가능성도 있어요. 그러니 우선은 ‘만화랑 애니 좋아해요’라고 말한 사람을 보자마자 ‘BL? 드림? 공식 중시파? 어디 살아? 인스타 해?’ 하고 들이대고 싶은 마음부터 가라앉히는 것에서 시작합시다.
구체적으로 상대의 성향을 가려내는 방법을 논하자면, 결국 본인 입으로 말하게 하는 것이 정답이겠죠.
여러 정황증거를 통해 속성이나 미는 커플링을 특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오피셜에서 언급된 적은 없지만 이 둘은 사귀는 거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아요. 즉, 오피셜 정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그걸 오피셜로 믿어버리면 또 다른 사고가 날 수도 있어요.
처음에 말했듯이, 암 검진하듯 초반에 바로 분류해내려는 건 그만두는 편이 좋아요. 하지만 ‘같은 직장에서 10년을 일했는데도 동료와 전혀 친해지지 못했다’는 일이 드물지 않듯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알려주게 되는 것도 아니긴 해요.
결국은 조금씩 단계를 밟아가며 물어보게 될 텐데, 그렇다고 해서 ‘캐내는 것’에만 너무 집중해도 안 돼요. 오타쿠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빠르게 쏟아내는 게 문제라고들 하지만, 반대로 상대 이야기를 들으려는 나머지 자기 얘기는 하나도 안 하고 질문만 던지면서 대화를 이어가려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대화가 안 살아나요.
상대의 정보를 알고 싶다면, 먼저 그만큼 자기 정보도 공개하는 게 예의겠죠.
다만 이쪽이 ‘BL’ 카드를 냈다고 해서, 상대가 거기에 맞춰 ‘드림’ 카드를 내야 하는 규칙 같은 건 없어요.
아직 마음을 열지 않은 상태라면, 이쪽이 아무리 정보를 공개해도 상대는 중요한 패를 보여주지 않은 채 영원히 이번 분기 애니 이야기만 해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결국, 내가 듣고 싶은 걸 듣기 위해서는 상대와 어느 정도는 친해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에요.
‘사람과 친해지는 법’에 대해서는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길 바라지만, 어쩌면 ‘만화나 애니메이션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하는 것’이 중요할지도 몰라요.
예전에 오타쿠끼리의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하던 쪽에서 ‘오타쿠 취미 말고도 다른 대화거리를 가져라’라고 말했다가 괜히 사람들 마음만 아프게 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결국 오타쿠 얘기만 해서는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가까워질 수 없다는 뜻이겠죠.
당신의 목적은 결혼이나 친구 만들기가 아니라 ‘오타쿠 속성’을 알고 싶은 거라는, 더없이 오타쿠다운 것이기 때문에, 만화나 애니메이션 얘기만 계속해도 언젠가는 답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되도록 ‘빠르게’를 원한다면, 오타쿠 얘기만 하지 말고 다른 사적인 이야기도 섞는 편이 오히려 거리를 좁히는 데 더 빠를 것 같아요.
만약 ‘만화나 애니메이션 말고 다른 주제’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진다면, 사람과 단기간에 친해질 재능은 없다는 뜻이니 그럴 땐 신중하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캐내는 수밖에 없어요. 요즘은 만화도 애니도 작품 수가 엄청나게 많잖아요. 오래 시간을 들여서 겨우 물어봤더니 ‘작품도, 그 캐릭터도, 그 커플링도 전혀 모르겠는데요…’ 같은 민망한 상황이 되는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깊게 팔 거라면 그 정도는 각오하시길.




선생님, 안녕하세요.
칼럼을 통해 창작론 책을 알게 되어 읽어봤습니다.
오타쿠에게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다는 걸 느꼈고, 저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 문득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어요. 상대가 공식파인지, 드림인지, BL인지 같은 ‘오타쿠 유형’을 초반에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인터넷에서도 현실에서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물어봐야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면서 같은 취향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지 항상 고민돼요.
인터넷이라면 프로필이나 미디어 탭 등에 커플링 표기를 해둔 분들은 같은 취향이겠거니 짐작할 수 있는데, 현실에서 ‘혹시 BL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더라고요. (참고로 저는 BL 쪽입니다)
인터넷상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성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프로필에 따로 표기가 없는 분들을 보면 우리 판은 아닌 건가 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이럴 때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실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