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영상을 그리는 나’ 잘못됐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결국 근본은 모두 똑같다 /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상담

글/ 카레자와 카오루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그리고 있을 뿐, 스스로 창작하고 있다는 실감이 없어요
역대급으로 긴 상담문을 보니 ‘머릿속에 넘쳐나는 걸 써내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게 딱 느껴집니다.
요약하자면 ‘나는 아이디어를 일부러 짜내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캐릭터가 영상처럼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해서 그걸 그냥 그리고 있을 뿐이에요… 상상이나 망상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요’라는 이야기인 것 같네요.
먼저, 이 고민 자체를 재수 없다고 느낄 창작자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이런 얘기는 웬만하면 남들한테 말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몰라요.
굳이 말할 거라면, 최소한 좀 더 거만하게 말하도록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고민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건 알겠지만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쪄요’라는 말처럼, 일반적인 사람들한테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고민이라는 걸 이해하는 편이 좋아요.
하지만 이게 당신만의 창작 스타일인 건 확실하고, 저도 약간은 이해가 가요.
혹시 진짜 저랑은 완전히 다르게, 계시라도 받은 듯이 최애 커플의 이야기가 영상으로 내려와서 그걸 그대로 출력하고 있는 거라면 천재의 고민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이 상담은 여기서 끝입니다. 저도 한계라는 게 있거든요.
나도 가끔 머릿속에서 캐릭터가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이제부터는 불행하게도 저와 비슷한 유형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이야기해 볼게요. 세상에는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임없이 제멋대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존재해요.
제 경우에는 그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대개 ‘나와 나’예요. 머릿속에서마저 대화를 나눌 상대가 나 자신뿐이라니, 참 딱한 일이죠.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칼럼이나 에세이로 출력된다고 하면 멋져 보일 수도 있지만, 무의식 속의 대화를 그대로 옮기면 결국 ‘똥똥똥~ 러블리~!’, ‘죽어’처럼 나와 나의 대화다운 결론이 되고 말아요.
그래도 주제를 하나 던져주면 ‘나와 나’가 알아서 대화를 시작하긴 해요. 그걸 기록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요. 당신은 어쩌면 저보다 훨씬 고도화된 버전일지도 모르겠네요.
‘나의 창작법’이라 인정하기 위해서는
제 머릿속에는 하루 종일 제가 두 명 나타나서 배설물 이름을 주거니 받거니 외치는 정도지만, 아주 드물게 ‘캐릭터끼리’ 대화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고, 그걸 그대로 작품화할 때도 있어요.
다만 제 뇌 속에서 캐릭터가 등장하는 빈도는 상당히 낮고, 특히 ‘내가 만든 캐릭터’의 출현 확률은 뽑기 게임으로 치면 공정위에 신고 들어갈 수준으로 현저히 낮죠.
조건이 있는데, 첫째는 제가 그 캐릭터에게 애착이 있어야 한다는 점, 둘째는 독자 반응도 좋을 것.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된 상태에서 수면 시간이 2시간 이하로 떨어지면, 제 뇌 속에서 캐릭터들이 작품으로 옮겨도 될 정도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애초에 두 번째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첫 번째 조건인 ‘애착’도 단순히 ‘내가 만들어낸 가엾은 생명이니 나라도 사랑해 줘야지…’ 같은 감정이 아니라 좀 더 ‘모에’에 가까운 감각이에요.
당신도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푹 빠진 커플링’의 영상이지, 모르는 아저씨들끼리의 찐한 일상이 느닷없이 흘러나오진 않잖아요?
만약 그게 진짜 초자연적 계시에 가까운 거라면, 하늘의 최애 커플의 장면이 마음대로 흘러 들어와야겠죠.
그런 게 아니라 당신의 최애 커플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라면 그건 당신이 그 커플에 ‘모에’를 느끼고 있다는 뜻이고, 적어도 ‘좋아한다’는 감정은 분명히 있다는 얘기예요.
게다가 아무리 특수 능력처럼 작품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해도, 그걸 ‘만화’라는 번거로운 작업 방식으로 출력하려면, 최애 커플에 대한 엄청난 열정이 필요해요.
아무리 망상을 잘해도 귀찮아서 그려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어쩌면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로한 선생님 같은 방식으로 그리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게 최애 커플에게만 발현되는 스탠드라면 그 원동력은 역시 ‘모에’일 수밖에 없고, 그 스탠드는 분명히 최애에 빠져 있을 거예요.
즉, 당신이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방식’은 전혀 다를 수 있지만, 그 바탕에는 모두 커플에 대한 애정이 있으니, 굳이 자신이 비주류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머릿속에서 캐릭터가 알아서 움직이는 정도가 너무 정교해서, 스스로 만든 것 같다는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관자놀이에 정체불명의 전극이 두 개쯤 꽂혀 있지 않은 이상, 당신의 머릿속에 나타난 건 결국 당신이 생각해 낸 거니까 자신감을 가져도 돼요.
그렇지만 주의는 필요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당신에게 그대로 해당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머릿속 대화라는 건 눈앞에 사람이 있어도 멋대로 시작되곤 해요.
눈앞의 사람은 제쳐두고 머릿속 인물과 대화를 시작해 버리기 때문에 ‘말이 없는 사람’, ‘남의 말을 안 듣는 사람’이 되기 쉽고, 뇌 속 대화가 활발해질수록 현실에서 대화를 나눠주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죠.
보통이라면 그냥 미움받고 끝날 타입이지만, 뇌 속 대화를 바탕으로 글이나 만화를 그리다 보면 드물게 그걸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생기기도 해서, 비틀린 형태로나마 창작하게 된 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도 최애 커플의 영상이 흘러나올 때 ‘완전히 딴생각 상태’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고, 사람 말은커녕 바깥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정신 차려 보니 건널목 안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우선 주변의 안전부터 확인해 주세요.

↑일본어 이외의 고민 상담도 환영합니다.
이 시리즈가 단행본으로!
단행본화를 축하하며 ‘동인녀의 감정’의 저자 사나다 츠즈루 님과 대담을 나눴어요. 체크해 보세요!



저는 2차 창작으로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고 있는데, 스스로 모에 소재를 생각해 내지 못한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요.
창작을 하시는 분들은 ‘이런 전개가 모에지!’ 혹은 ‘이런 모습의 내 최애를 보고 싶어!’ 같은 열정으로 창작에 임하시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그런 식으로, 자발적으로 떠오르지 않아서 ‘이런 설정 대박 모에’ 같은 가벼운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억지로 생각해 보려 해도 ‘내 최애 커플… 소중해… 귀여워…’ 같은 말밖에 떠오르지 않고, 머리가 멈춘 것처럼 아무 생각도 이어지지 않아요.
혼자서 망상을 할 수 없는데도 어떻게 만화를 그리냐면, 한 커플에 빠지게 되면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전혀 맥락 없이 갑자기 최애 커플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영상처럼, 또는 이미 컷 분할이 끝난 만화처럼 마구 흘러 들어와요. 그래서 저는 급히 메모해 두고 정리해서 올릴 뿐이에요.
물론 최애 커플을 정말 정말 좋아하니까, 머릿속에 흘러든 장면을 제대로 형태로 남기지 않으면 속이 안 풀려요. 그렇게 계속 흘러 들어오는 장면을 그려서 내보내는 걸 그냥 반복하고 있죠. (다른 2차 창작을 전혀 보지 않아도 장면이 흘러 들어오는 걸 보면, 무의식적으로 어디서 베껴오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냥 머릿속에 보이는 걸 따라 그리고 있을 뿐이라서 이걸 ‘내 창작물’이라고 느끼기 어렵고, 늘 자신이 없어요. 감사하게도 반응이나 감상을 받을 때도 있지만, 저는 그게 민망하기만 하고 그런 제 자신이 또 싫어져요.
이렇게 머릿속에 떠오르기만을 기다렸다가 그걸 그대로 옮기는 완전 수동적이고 평평한 창작 자세에 대해 큰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오타쿠로 태어난 이래 줄곧 이 스타일로 살아온 터라 이제 와서 방식을 바꾸는 법도 모르겠고, 또 멋대로 흘러드는 영상은 멈출 수도 없어서, 오늘도 어김없이 갑자기 시작된 최애 커플의 환상을 베껴 그리고 있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자신이 직접 생각한 모에 소재를 발표하면서 자존감 높게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너무 빛나 보이고, 나도 수동형이 아니라 자발형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어떻게 해야 모에 소재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법 같은 게 있을까요?
두서없는 고민을 털어놔서 죄송해요.
어떤 조언이라도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