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걸 못 쓰고 자꾸 꾸금만 써요’ 가상의 캐릭터를 좋아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상담

글/ 카레자와 카오루
건전하게 끝내질 못하고, 결국 꾸금만 써요
제 칼럼은 보통 한 편당 ‘2,000자’를 기준으로 하는데, 대개 1,200자쯤 되면 할 말이 바닥납니다. 게다가 이 연재처럼 ‘고민 사연까지 포함해서 2,000자를 넘기면 OK’라는 특수 룰이 적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그러니 솔직하게 말하면, 고민 사연은 얼마든지 딴 길로 새도 됩니다. 길어질수록 저는 편하거든요.
남의 힘을 빌려 겨우 2,000자를 채워놓고도 ‘오늘도 한 건 해냈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데, 설령 뒤에 15,000자 분량의 야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그 전에 이미 건전한 부분을 15,000자나 썼다면 그건 충분히 ‘수위 없어도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3만 자짜리 소설을 읽고 ‘얘는 이 커플링을 성적으로 소비하고 싶을 뿐이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아마 ‘그럴 거면 좀 더 효율적인 소비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해서겠죠.
저를 포함해서 꾸금을 좋아하지만 정작 직접 쓰지는 못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꾸금을 써주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어요. 다이어트하려는 여자친구 입에 피자를 밀어 넣으며 ‘넌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멋져’라고 말하는 뚱보 페티시의 남자친구처럼 저도 ‘당신은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좋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하지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당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 따로 있다면 결국 그 모습이 되는 편이 좋겠죠.
정말로 건전한 걸 쓰고 싶은 걸까?
그런데 당신이 건전한 연성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솔직히 잘 보이지 않아요.
저 역시 조금 야한 러브코미디를 쓰고 싶어도 못 써서 고민하는 쪽이지만, 애초에 제가 못 쓰는 장르는 그것 말고도 3억 개쯤 더 있죠.
그런데도 왜 하필 러브코미디를 못 쓰는 것만 고민하느냐 하면, 그 장르를 가장 좋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남이 쓴 러브코미디를 읽고 ‘나도 이런 걸 쓰고 싶다’고 강하게 생각하고, 내가 쓴 러브코미디로 독자들이 감정이 북받쳐 책상을 내려치게 만들고 싶다는 꿈도 품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더더욱 스스로는 쓸 수 없고, 심지어 못 쓰는 이유가 ‘부끄러워서’라는 잠꼬대 같은 이유라는 사실에 깊이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거겠죠.
하지만 당신의 경우는 건전한 것도 좋아하긴 하겠지만, ‘사실 수위 연성보단 건전한 게 더 좋고 더 쓰고 싶다’는 느낌은 아닌 것 같아요. 아니, 이야기가 샜다고 하면서도 ‘우여곡절 끝에 이어지고, 몸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가장 중요한 부분을 써버렸잖아요.
마음도 몸도 이어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당신에게, 마음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딘가 찜찜하게 남는 이야기일 뿐일 거예요. 그러니 매번 중간에서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가버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오히려 건강하게 생각하면 그 편이 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은 건전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게 아니라, ‘건전한 것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당신은 꾸금만 쓰는 자신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고 있고, 그 밑바탕에는 ‘꾸금은 좋은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현실의 연애에서도 육체적인 관계만 있는 건 좋지 않다거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 논리를 억지로 2차 창작 세계에 가져오면 몸의 관계만 계속 쓰는 사람은 그 커플링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할 수 없고, 커플링에 대한 애정을 증명하려면 건전물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지나치게 복잡한 마음에 빠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몸도 마음도 결국 그 사람의 일부인 건 마찬가지 아닐까요?
한 부분만 이어져 있는 게 문제라면 ‘마음만 이어진 관계’ 역시 불건전하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런 관계는 순애로 떠받들어지죠. ‘결국 내 마음만 보고 접근한 거였잖아!’라고 외치며 뺨을 날리는 여자는 저도 본 적이 없어요.
실존하지 않는 캐릭터를 향한 애정은 현실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어요. 그러니 억지로 건전물에 집착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커플링을 매번 꾸금 상황에 처하게 만든다’는 자신의 애정 표현 방식에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보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건전한 걸 써보고 싶다면
하지만 사람은 할 수 있는 것보다 못하는 것에 더 신경이 쓰이는 법이고, 건전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면 자기긍정감도 올라가고, 좋아하는 커플링의 그림 작가에게도 위축되지 않고 말을 걸 수 있게 되고, 심지어 키까지 클 것 같다고 느낀다면, 그건 쓸 수 있게 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떻게 해야 쓸 수 있느냐고 하면, 결국 못하는 걸 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반복 연습’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쓸 수 있을 때까지 쓰다 보면 결국 쓰게 된다는 마음으로 계속 건전 창작에 도전하는 게 중요해요.
당장은 잘 안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처음에는 만나자마자 4초 만에 한 몸이 되던 두 사람이 언젠가는 ‘관계를 맺어야만 나갈 수 있는 방’에서 당당하게 무사 귀환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될지도 몰라요.
설령 결국 못 쓰게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실패작’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꾸금이 탄생하는 셈이니 완전히 무의미한 일은 아니에요. 그것도 공개하면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을 테고요.
실로 낭비가 없고, 지속 가능한 친환경적인 도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안녕하세요, 카레자와 선생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선생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휘력에 절망하면서도, 매일 좋아하는 커플링 소설을 연성하고 있는 글러입니다.
제 고민은 좋아하는 커플링 소설을 쓸 때마다 반드시 성인향이 되어버린다는 점인데요. 예전에 카레자와 선생님의 고민 상담 중에 ‘부끄러워서 꾸금을 못 쓰겠다’는 사연이 있었는데, 저는 정반대예요. 건전하게 끝내는 재능이 없어요. 성인 등급이 붙는다고 해서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매번 이렇게 성인향만 쓰고 있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커플링을 그저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하고 싶은 건가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고 있을 것 같아서 꽤 고민이 됩니다.
쓰고 싶은 걸 써라! 라는 말이 맞다는 것도 알고, 저 역시 가벼운 야한 개그물도 좋아하고 수위 없는 것도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서로 이어지고,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좋아하다 보니 결국 매번 완성되는 건 우여곡절도 잔뜩 담긴 총 3만 자 정도의 장편(그중 절반 정도가 관계를 맺는 장면) 꾸금 소설이 되어버려요.
이야기가 조금 샜지만, 글을 올리고 나면 늘 ‘이 우여곡절만으로 끝낼 수는 없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얘는 또 야한 것만 썼네’라는 소리를 듣고 있을 것 같아서, 같은 장르에서 좋아하는 그림 작가님(수위 없는 작품 위주이고, 맞팔은 아님)에게 감상을 전하는 것조차 망설여져요. 물론 애초에 맞팔도 아닌데 갑자기 멘션을 보내면 당황스러워할 것 같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렇게 꾸금만 계속 쓰는 글러는 역시 좋지 않은 걸까요? 그리고 건전하게 끝내려면 어떤 점을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