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작품을 언급하는 게 부끄러워요’ 상대는 흑역사를 파헤치는 도굴꾼이 아니다 /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상담

글/ 카레자와 카오루
과거 작품을 언급하면 부끄러워요
창작을 하는 이상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자신의 상상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로 결정한 순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처럼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로 시작되는 인생이 시작되는 거니까요.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옛날에 그렸던 것’은 누구나 조금은 부끄러운 기억이에요.
거장 작가들조차도 ‘8주 만에 연재 중단됐던 선생님의 데뷔작 팬이에요. 그 두꺼운 1권은 지금도 제 보물이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 집까지 태워버릴 방법을 고민한다는 말이 있죠.
또, 일본 우키요에의 대가라고 불리는 가츠시카 호쿠사이조차도 말년에 ‘화광노인 만지 선생님(가츠시카 호쿠사이의 필명 중 하나)의 호쿠사이 시절부터 팬이에요!’라는 말을 들었다면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을걸요.
하지만 애초에 머릿속에 숨겨둔 것을 일부러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창작’이라는 노출 행위 자체가 원래 어느 정도 부끄러운 일 아닐까요?
자신의 상상을 머릿속에서 꺼내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것을 꺼내서 보여주는 우리들은 이미 상식에서 조금 벗어난 사람일 테니까요.
그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오랫동안 계속하는 사람이 ‘덜 성숙했던 노출 데뷔 시절의 내 몸을 떠올리면 부끄러워죽겠어!’라고 하면서도 지금도 계속해서 자신을 노출하고 있다면 ‘부끄러워할 건 그게 아닐 텐데’ 혹은 ‘이제 와서 뭔 소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부끄럽다고 느끼는 건 성장했기 때문
어린 시절의 미숙했던 나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것은 창작자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죠. 하지만 과거의 나 역시 장난삼아 쇠사슬에 묶인 수를 뒤에서 안고 있는 칠흑의 날개를 단 공을 그렸던 건 아닐 테죠. 그때도 분명 진지하고, 진심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 말처럼 그 당시는 즐거웠을 테고요.
과거의 색깔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에요. 밝기와 채도를 조절하는 컨트롤러도 자기 손에 있죠. ‘최선을 다해 열정을 바쳤다’는 의미에서는 고교 야구 선수들과 다를 바 없는데, 그걸 스스로 부끄러움이라는 색으로 덧칠해 버린다면 황금기조차 흑역사가 되어 인생이 빛을 잃게 될 뿐이에요.
하지만 ‘과거를 부정하는 것’과 ‘미숙했던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마흔이 넘어서도 고등학교 일진 시절 얘기를 떵떵거리며 하는 사람이 있다면 민망하겠죠.
과거를 지나치게 부끄러워하는 것도 문제지만 과거의 미숙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제3자가 보기엔 부끄러운 일이랍니다.
청춘을 창작에 바친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다만, 그 시절의 작품을 다시 보면 상반신과 얼굴 클로즈업, 최종적으로 눈동자나 ‘훗’하고 웃는 입가 클로즈업밖에 보이지 않을걸요. 소설 역시 꾸금 씬에서 공의 팔이 3개가 되는 등 ‘기술적’으로 미숙했죠. 내용 면에서도 독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처음 그려서 망했네요(땀)’ 같은 독자가 원하지도 않는 변명이나 코멘트를 늘어놓는 등 ‘반성할 만한 요소’가 산더미라서 그 작품을 남들에게 보여줬던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제 다 컸는데 계속 엄마가 양말을 신겨주는 건 부끄러운 일 아닐까?’처럼 그것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사람은 성장하고, 성장했기 때문에 과거를 부끄러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과거 작품을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당신이 창작자로서 확실히 성장했고 ‘예전 작품보다 지금 작품이 더 낫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적어도 과거 작품에 대해 ‘그때가 더 좋았던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은 거죠.
창작이란 기술적인 면에서는 오래 할수록 실력이 늘지만, 센스나 평가는 꼭 경력에 비례하는 건 아니에요.
예전 작품이 크게 성공했던 작가가 차기작에서 실패할 수도 있고, pixiv에 올린 작품 중에서도 예전 작품의 북마크가 더 많을 수도 있죠.
그럴 때 ‘과거 작품 팬이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이 자식의 머리를 깨서 과거의 기억을 지워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단 ‘그때 스타일을 계속 유지했어야 했나?’라는 불안감이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제 와서 예전처럼 그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결국 ‘지금 작품은 별로라는 거야?’라며 칭찬해 준 사람에게 피해망상을 터뜨리게 될 수도 있죠.
그런 상황에 비하면 ‘옛날 기억은 불태워 버리고 지금의 나를 봐줘!’라고 생각하는 건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부끄러움에 괴로워하면서도 ‘10년 후에 언급되더라도 상대를 죽일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될 작품을 그리겠어!’라는 각오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 억지로 태연한 척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며 그 부끄러움을 소중히 간직하시길 바라요.
‘과거 작품이 좋아요’는 상대방의 감정이자 추억
물론 ‘나의 과거 작품이 부끄럽다’는 당신의 감정을 억지로 숨기고 자랑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당신의 과거 작품을 좋아해요’라는 말은 결국 상대방의 감정이자 추억이므로 그것에 흠집을 내어서도 안 되겠죠.
16살의 어느 밤,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던 차에 듣고 위로받았던 노래에 대해 훗날 작곡가가 ‘그건 흑역사라서 없던 걸로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면 너무 괴롭잖아요.
부끄러움이라는 화염은 마음속에만 고이 간직하고, 상대방에게는 그 불길을 들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요.
그리고 지금 보면 완전히 자기만족에 불과한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만족을 주었고,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오히려 기뻐할 일 아닐까요?
때로는 ‘저 사람을 좋아했던 게 내 흑역사’라며 이중으로 흑역사 취급을 받을 때가 있잖아요.
상대방은 당신의 흑역사를 파헤치는 도굴꾼이 아니라, 그 흑역사에 비친 한 줄기 빛이에요.
기억을 지우려고 불태우는 대신, 그 빛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게 어떨까요?

↑일본어 이외의 고민 상담도 환영합니다.
이 시리즈가 단행본으로!
인기 시리즈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 상담’이 ‘오타쿠의 즐거운 창작론’(문학춘추 출판)라는 제목으로 단행본화 되었습니다!
‘원작을 무시한 2차 창작이 걱정돼요’, ‘마이너 장르라 독자들이 별로 없어요’, ‘40대면 동인 행사 그만둬야 할까요?’, ‘최애를 죽이고 마는 모순과 고뇌’ 등 인기 상담은 물론 신작에 대한 고민까지 담겨 있습니다.
단행본화를 축하하며 ‘동인녀의 감정’의 저자 사나다 츠즈루 님과 대담을 나눴어요. 체크해 보세요!



저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동인녀인데, 10대 때 처음 동인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의 작품에 대한 언급을 들으면 식은땀이 나요. 젊음의 패기로 이것저것 신나서 인터넷에 올렸던 작품들, 너무나도 적나라한 작가 코멘트까지… 지금 보면 유치함이 폭발하는 과거의 기록에 경악하곤 해요.
‘예전 그 작품 정말 좋았어요!’라고 호의적으로 말씀해 주셔도 ‘고맙지만 지금 당장 종이로 된 건 불태우고 PC와 두뇌 속에서 데이터를 삭제해 주세요! 제발요!’라고 속으로 절규하게 된답니다.
과거는 즐거운 추억이고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이 미숙했던 제 과거 작품에 대해 언급하는 건 정말이지 부끄러워요.
과거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강철 멘탈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