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 중’ 그 이상은 정말 그릴 수 있는 것인가? /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 상담

글/ 카레자와 카오루
‘이상 속의 그림’과 ‘실제로 그릴 수 있는 그림’ 사이에서 고민돼요
‘히에이는 그런 말 안 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지만, 이 말은 히에이 해상도 3dpi가 생각해 낸 조잡하기 짝이 없는 히에이의 대사에 대한 유유백서 오타쿠의 영혼을 담은 항의로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죠.
하지만 만약 히에이 전문가들을 모두 모아서 히에이가 할 만한 말을 모두 했다고 해도 그녀에게 ‘히에이가 할 법한 말’이라는 판정을 받을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어요. 오타쿠 중에는 좋아하는 캐릭터라면 무엇이든 소비할 수 있는, 심지어 월급 전날에 스마트폰 화면 속에 있는 최애를 물고 뜯으며 버틸 수 있는 ‘잡식’들도 있지만, 반대로 상상한 고집을 가진 사람들도 많거든요.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어느 쪽이 ‘편한가’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잡식이 훨씬 편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중에는 잡식이라고 하면서도 먹을 것을 하나도 찾지 못해서 대기근을 겪는 장르도 있지만, 대형 장르의 인기 캐릭터를 좋아하는 잡식이라면 대대손손 굶주릴 일은 없겠죠.
하지만 고집이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해석’을 가지고 있다면 그 해석에서 벗어난 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고, 너무 동떨어져 있다면 이번에는 최애가 지뢰가 되어 덮쳐오는 사태가 생기죠. 최종적으로는 ‘최애에 관한 이차 창작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물론 독자적인 해석이 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부분도 있죠. 발굴된 화석을 바탕으로 공룡과 공룡이 살았던 시대를 검증해 나가듯이, 오피셜이라는 원래의 소스를 바탕으로 거기에 묘사되지 않은 최애 캐릭터를 연구하고, 독자적인 해석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때로는 다른 연구자들의 해석에 감명 받거나, 대립하는 해석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겠죠. 게다가 오피셜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최애 캐릭터의 모습을 보고 새 유적이 발굴됐으니 지금까지의 가설을 모두 뒤엎는 역사가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지, 아니면 ‘오피셜이 잘못됐다’라며 당당하게 선언할지 힘든 결단을 내려야 하는 등 그 길은 아주 험난할 거예요. 하지만 ‘보람’이라는 측면에서는 잡식성들에게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죠.
최애에 대한 이상이 높아졌을지도
하지만 누구든 머릿속에선 만물을 창조할 수 있듯 머릿속으로는 이상적인 최애나 커플링의 모습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지만, 연구자가 논문으로 자신의 학설을 세상에 알리는 것처럼 자신의 상상과 해석을 그림이나 글로 구체화하려고 하면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진답니다.
선천적으로 그림 실력이나 문장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머릿속에서 상상한 캐릭터와 눈앞에 놓인 허술한 조형물의 차이에 크게 놀라지 않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상업적으로도 그림을 그린다고 하셨으니 아마도 당신은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일 테고, 직접 그리신 최애 커플 그림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잘 그린 그림일 수 있어요. 어쩌면 존잘님일 가능성까지 있죠.
여기서 이토 준지 작가님의 대표작인 ‘토미에’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마성의 여자 토미에에게 빠진 남자가 ‘토미에… 토미에…’하며 거친 숨을 내쉬며 미친 듯이 붓을 놀려 토미에의 초상화를 완성하고는 곧바로 ‘전혀 다르잖아!’라며 맨손으로 그 캔버스를 찢어버리죠.
많은 창작 오타쿠들이 ‘내 얘기잖아’라며 눈물을 머금었고, 패러디도 많이 나온 유명한 장면인데요. 그 남자가 그린 토미에의 초상화가 그렇게 형편없었냐 하면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토미에에게 미쳐있는 그의 마음속 토미에는 ‘이 정도’ 수준이 아니였겠죠. 그의 이상 속의 토미에와 비교한다면 아무리 잘 그린 그림이라도 그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졸작으로 보였을 거예요.
당신도 ‘평생 그리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그 커플에 미쳐있으니 이상적인 최애 역시 ‘이 정도’로는 용납할 수 없을 가능성이 있어요.
즉, 원래 상상했던 그림과 자신의 그림 스타일이 다를 뿐만 아니라 ‘하늘에 핀 환상의 꽃’ 수준으로 이상이 너무 높아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요.
주변에서 ‘네가 이 장르 먹여 살리는 존잘님이니까 이제 그만해’라고 울며 뜯어말려도 ‘이게 아니야!’라며 도자기를 깨며 계속 그릴 타입인 거죠.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격차에 지쳐서 ‘최애는 직접 그리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드림소설을 극한으로 추구하다가 ‘나를 좋아하는 최애는 캐해와 맞지 않아’라는 결론에 이르러 결국 자신과는 다른 인격을 드림주로 만들어 최애를 맡기는 것처럼, 최애의 그림을 다른 작가에게 맡기는 것이죠.
저도 FGO의 히지카타를 직접 그리는 건 일찍이 포기하고 존잘님이나 오피셜의 축복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입장이에요.
자신의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그릴 수밖에 없지만, 타임라인에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리쉬한 그림이 올라온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자신이 그린 최애에 매번 실망하느니 차라리 깨끗이 포기하고 보기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평생 그리고 싶을 정도라면 쉽게 그려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이상적인 최애 커플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포기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내가 콘티 짜서 스타일리쉬한 그림체 가진 분한테 커미션 맡길까’라는 생각은 저도 하루에 15번은 하지만, 원작자가 너무 타협해 주지 않아서 작가가 노이로제에 걸리는 경우도 있어요.
당신도 맨손으로 목제 캔버스를 부술 정도로 최애 커플에 대한 고집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열정으로 다른 작가분의 펜을 꺾어버릴 위험도 충분히 있어요.
스타일리쉬한 그림을 그리는 소중한 작가님의 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역시 포기하지 않고 직접 그리는 게 좋겠죠.
애초에 ‘평생 그리고 싶다’라고 생각할 정도면 쉽게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든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도박의 중독성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얻는 ‘이번에는 다를지도 몰라’라는 설렘에 있다고 해요.
그림 스타일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니까 앞으로도 자신의 이상과 동떨어진, 말씀하신 오타쿠 풍의 최애 커플을 그리면서 깊은 절망과 함께 ‘다신 안 그려!’라며 태블릿을 팽개치는 날들이 계속되겠죠.
하지만 생각한 대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매번 ‘오늘이야말로 예술적이고 스타일리쉬한 최애 커플이 탄생하지 않을까?’라는, 이미 그것을 이룬 작가들은 느끼지 못하는 설렘을 느끼며 창작에 임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도박이라면 언젠가는 파국을 맞겠지만, 창작이라면 몇 번을 도전해 봐도 괜찮잖아요. 저비용에 장기적인 데다가 무엇보다 합법적으로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일은 쉽게 얻을 수 없으니 오히려 럭키라고 생각해봐요.

↑일본어 이외의 고민 상담도 환영합니다.
이 시리즈가 단행본으로!
인기 시리즈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 상담’이 ‘오타쿠의 즐거운 창작론’(문학춘추 출판)라는 제목으로 단행본화 되었습니다!
‘원작을 무시한 2차 창작이 걱정돼요’, ‘마이너 장르라 독자들이 별로 없어요’, ‘40대면 동인 행사 그만둬야 할까요?’, ‘최애를 죽이고 마는 모순과 고뇌’ 등 인기 상담은 물론 신작에 대한 고민까지 담겨 있습니다.
단행본화를 축하하며 ‘동인녀의 감정’의 저자 사나다 츠즈루 님과 대담을 나눴어요. 체크해 보세요!



저에게는 평생 이차 창작을 하고 싶은 커플링이 있어요. 그런데, 제 그림 스타일이나 작품 분위기가 그 커플링과 전혀 맞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커플링은 조금 더 예술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이 어울릴 것 같고 실제로도 그런 작품이 많이 있는 편이에요.
하지만 제 그림은 완전히 오타쿠 스타일이라서 ‘억지로 최애 커플을 그리고 있군’이라는 인상을 줘요. 상업적으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오타쿠 그림이 더 부각되면서 점점 이상적인 그림과는 멀어지는 악순환에 빠졌어요.
오늘도 세련된 최애들의 그림이 제 타임라인을 가득 채우고 있고 ‘이 사람의 그림으로 내 콘티를 그리면 더 좋은 작품이 될 텐데’, ‘나는 왜 이렇게 못 그리지?’라는 자괴감에 빠지고 말아요.
이상적인 그림과 실제로 그릴 수 있는 그림의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카레자와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