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은 별로인가?’ 그림은 실력보다 매력이 중요! 비교는 금물! /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상담

글/ 카레자와 카오루
나는 내 생각보다 그림을 못 그릴지도
먼저 저는 당신의 그림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은 어려워요. 하지만 당신이 그림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저보다 못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겠죠. 결국 ‘나 완전 존못…’하며 슬퍼하는 지뢰계 미인에게 ‘전혀 그렇지 않아’라며 위로하는 진짜 존못이 되는 구도가 될 게 뻔하니 굳이 그런 짓은 하지 않을게요.
어쩌면 당신도 A님도 존잘님인데, 괜히 저만 신들의 싸움에 말려든 줄도 모르고 ‘이 싸움은 내가 끝내야겠군’하며 우쭐대는 농민이 될지도 모르고요. 여러 의미에서 리스크밖에 없는 상담이네요.
하지만 이건 그림 실력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는 공과 죄를 보여주는 아주 심각한 고민이기도 해요.
먼저 콤플렉스에는 두 가지 패턴이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지적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는 다른 사람보다 콧구멍이 크네’라고 깨닫는 패턴, 그리고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너 콧구멍이 좀 큰 거 아냐?’라고 지적을 받는 패턴이죠.
스스로 깨닫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역시 다른 사람에게 지적받는 쪽이 더 충격이 크겠죠?
기본적으로 ‘자기 평가’와 ‘타인의 평가’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삶이 힘들어진다고 해요.
다른 사람이 지적했을 때 ‘네 콧구멍이 너무 작은 거 아니고? 코딱지로 막힌거 아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아가 강하다고 해도, 오히려 주위에서 ‘자의식 과잉으로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 취급받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기피나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만약 당신이 B님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A랑 내 그림이 똑같다니 네 촌스러운 안경은 장식품이야? 것보다 아저씨 같은 안경이나 끼는 너한테 내 그림을 평가받고 싶지 않은데?’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B님과의 관계는 끝날 게 분명하고, 앞으로 자신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 타인이나 세상에 대한 엄청난 불만을 안고 살아가게 될 거예요.
하지만 이 패턴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선 그래도 나쁘진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평가와 타인의 평가 사이에 간극이 넓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급하게 타인의 평가에 맞춰가게 되거든요. 사실은 유륜이 그렇게 크지 않더라도 ‘듣고 보니 너무 큰 것 같아. 이대로라면 헬리콥터가 내 착륙해도 이상하지 않겠는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고, 결국 이런 꼴로 밖에 나다닌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게 되죠.
아마도 지금 당신은 이 상태일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뚱보’라는 말을 듣고 상처받은 사람이 아무리 살을 빼도 자신을 뚱뚱하다고 생각하면서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금식을 하는 것처럼 이쯤 되면 이제 진짜 그림 실력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답니다.
실은 당신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환생한 존재였고, B님의 센스가 정말로 형편없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이런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별로라고 생각할 거라며 우울해하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콤플렉스는 나이가 들면 누그러지지만…
이렇게 타인의 평가에서 비롯된 콤플렉스는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완화된다고 해요.
젊을 때는 내가 모두에게 비웃음 받는 아싸가 된 건 내가 뚱뚱한 탓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 말고도 이유는 널리고 널렸는데 왜 몸무게 탓만 했을까’ 하며 스스로가 어리석게 느껴진답니다.
저도 40대가 되어서야 내 그림 실력을 깨닫고 수긍하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만 잘 그렸으면 더 잘되지 않았을까’라는 마음은 여전하죠. 아마 환갑 정도가 되면 ‘나는 그림을 잘 그렸어도 잘 안됐을 거야’라는 깨달음을 얻는 경지에 이르지 않을까요? 오히려 그랬으면 좋겠어요.
게다가 남은 인생도 길지 않은데 다른 사람 말에 일희일비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리 내 그림을 욕해도 나는 공의 어깨너비가 3미터인 적폐 유곽물을 계속 그릴 테다!’라며 당당지더라고요.
물론 ‘한 20년 정도 기다리면 너도 알 거야’ 같은 조언을 당장 받아들이긴 힘들겠지만요.
중요한 건 그림 실력이 아니라 얼마나 매력적인가
지금 당장 동기 부여를 하고 싶다면 ‘성공 경험’을 쌓는 것뿐이겠죠.
저는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악필이에요. 초등학생 때 시험지에 이름을 적어서 냈더니 제 글씨를 본 친구들이 ‘일단 이건 여자애 글씨는 아냐. 성적도 성격도 파탄난 남자애 글씨가 분명해’라며 프로파일링 하기 시작했죠. 거기서 박수를 치며 ‘탐정 여러분, 아쉽게도 그건 제 글씨랍니다’라며 나서지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갓 들어간 회사에서는 상사한테 ‘너 숫자 좀 제대로 적어!’라며 혼나기도 했고요. 정말이지 글씨 쓰기가 무서워질 정도로 트라우마투성이예요.
필체 연습을 해본 적도 있지만 놀랍게도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기만 했죠.
하지만 만화가가 되고 나서 이런 토할 것 같은 제 글씨도 저만의 매력으로 즐겨주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글씨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이 글씨를 재밌게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로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됐죠.
게다가 내 글씨가 좋게 봐주는 사람이 생긴 덕분인지 평소엔 글씨 지적을 받는 게 부끄러웠던 내가 ‘담당 편집자가 내 ‘ㅁ’과 ‘ㅂ’에 너무 집착해서 너무 짜증나. 두고 봐 진짜…’라며 내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사람들에게도 당당하게 나설 수 있게 되었어요.
작품에서 그림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실제로 그림이 아무리 좋아도 팔리지 않는 작품은 널리고 널렸고, 반대로 그림이 좀 별로여도 잘 팔리는 작품도 많은걸요.
중요한 건 독자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하는지에 달렸답니다.
그러니 그림 그리는 게 무서워진 지금이 가장 위험해요. 작품을 내지 않으면 팬들과도 멀어지고, 그렇게 되면 또 ‘역시 난 그림을 못 그리니까…’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요.
딱히 그림체를 바꾸거나 평소보다 더 잘 그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일단 어떻게든 신간을 그려서 행사에 참가하세요. 그림이 좀 별로이더라도 그런 내 작품을 사랑해 주고 돈까지 내고 사주는 사람이 있다는 ‘성공 경험’을 쌓아 나가면서 그림 실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내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봐요.
충격받는 이유는 ‘나보다 못해’라고 비교하기 때문
하지만 이 고민의 심각한 점은 단지 그림이 별로라는 지적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A님과 나를 동일 선상에 놓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평소 A님의 그림이 별로라고 생각했던 당신이 나쁘다거나 그림 실력보다 내면을 먼저 가꾸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만화나 일러스트에서 그림 실력은 무시하기 힘든 요소이고 그걸 평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니까요.
작품을 스스로 공개해 놓고 ‘그림 실력은 논하지 마’라고 하는 건 미남미녀 콘테스트에 출전해서 ‘외모가 아니라 내면으로 평가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겠죠.
그러니 당신이 A님의 작품을 보고 개인적으로 별로라고 생각하는 건 전혀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도 모르는 무의식중에 그저 ‘별로’가 아니라 ‘내가 더 잘해’, ‘나보다 못해’라는 평가를 하며 A님을 자신보다 아래로 보거나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당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던 A님과 같은 취급을 받은 것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가 무서워질 정도로 충격을 받은 건 아닐까요?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을 위로할 때 흔히 ‘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야’라고들 하죠. 하지만 어쨌든 자신이 A님을 아래로 보고 있었던 건 사실이니 결국 B님 눈에는 자신도 A와 비슷한 레벨로 보일 것 같고, 더 나아가서 C부터 Z까지 모두가 자신을 나보다 아래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해져 버린 게 아닐까요?
만일 A님이 자신보다 인기가 많아진다면 ‘나보다 못 그리면서 대체 왜?!’라며 질투에 시달렸을지도 모르죠.
우월감은 언젠가 더 큰 열등감으로 돌아올 수 있어요.
앞으로도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고 잘한다거나 못 한다, 그림은 별론데 왜 좋지? 같은 생각은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자신과 비교해서 위아래를 따지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 시리즈가 단행본으로!
인기 시리즈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 상담’이 ‘오타쿠의 즐거운 창작론’(문학춘추 출판)라는 제목으로 단행본화 되었습니다!
‘원작을 무시한 2차 창작이 걱정돼요’, ‘마이너 장르라 독자들이 별로 없어요’, ‘40대면 동인 행사 그만둬야 할까요?’, ‘최애를 죽이고 마는 모순과 고뇌’ 등 인기 상담은 물론 신작에 대한 고민까지 담겨 있습니다.



오늘 고민은 ‘난 내 생각보다 그림 실력이 별로일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얼마 전, 평소 그림 실력이 별로라고 생각했던 A님의 그림을 B님이 보더니 ‘네가 그린 건 줄 알았어’라는 말을 했어요. 솔직히 엄청 충격적이었어요. 그림 경력도 꽤 긴 편이고, 동인지도 그럭저럭 팔리는 편이라 제 그림 실력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던 터라 더 충격이더라고요.
곧 행사가 있어서 신간을 내고 싶기는 한데, 이제는 그림을 그리는 게 무서워져서 작업에 도통 진전이 없어요. 어떻게든 동기 부여를 하고 싶은데 뭔가 특효약 같은 건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