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는 귀찮지만 초대는 받고 싶다’ 모순처럼 보여도 자연스러운 욕구 /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상담

글/ 카레자와 카오루
교류는 귀찮지만 초대는 받고 싶다
저 역시 사람과의 교류가 서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에요. 그 정도가 꽤 심해서, 집은 물론이고 방 밖으로도 좀처럼 나가지 않고, 가족 외의 사람과 만날 일도 1년에 몇 번 정도밖에 없어요. 게다가 그 상대라는 것도 ‘편집자’라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애매해서 사실상 ‘노카운트’로 분류되는 인간 비슷한 존재들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외로움에 강한 사람인 건 아니에요. 오히려 꽤 외로움을 타는 편이고, 당신과 마찬가지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람과의 교류를 원하고, 적어도 누군가에게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겉으로 보면 ‘비건계 최고의 육식 애호가’ 같은 모순된 존재처럼 보이겠지만, 솔직히 이런 성향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좋아한다’라는 감정과 ‘피곤하다’라는 감정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아무리 난폭한 말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 말 위에 오래, 그것도 자주 올라타는 건 체력적으로 무리일 거예요.
마찬가지로 ‘사람도, 사람과의 교류도 좋아하지만 피곤하다’는 성향의 사람은 그리 드물지 않아요.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보다 피곤함을 더 크게 느껴서 사람과는 가능한 한 교류하지 않는 ‘편한 길’을 선택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요.
그러니 당신은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남의 동향에 관심을 갖고 그 무리에 끼고 싶어 하는 이상한 생물이 아니에요. 이런 유형의 사람은 꽤 많으니까요.
다만 편한 선택을 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사람과의 교류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외로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거겠죠.
그래서 교류의 무리에 끼지 못해 외롭다고 느끼는 것도,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대화나 푸념을 보며 ‘머릿속으로 참전’하게 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 같은 ‘외로움을 타는 혼자파’에게는 정상적인 작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적어도 일상적인 교류라는 ‘피로’를 감수하지 않으면서 초대받지 못한다고 화를 내는 것보다는 훨씬 정상적이고, 편한 길을 선택한 대가인 ‘외로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머릿속 대화로 조용히 달래려 하는 모습은 오히려 성실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걸요.
그래도 정말 외로움이 견디기 힘들다면, 조금 피곤하더라도 교류를 시작해 볼 수밖에 없겠죠.
인생은 결국 선택의 문제이니까요. 번거로운 대화는 건너뛰면서 행사 뒤풀이만 갑자기 불러주길 바라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설령 운 좋게 불려 간다고 해도, 그런 뒤풀이는 아마 지옥처럼 피곤하겠죠.
창작을 하면 외로움은 조금 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보면, 우리처럼 사람과의 교류를 원하면서도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유형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지칠 대로 지치거나, 아니면 외로움을 견디며 혼자 지내거나 하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죠. 그건 꽤 괴로운 일이에요.
여기서 구원이 되는 것이 바로 ‘창작’이 아닐까요.
오히려 창작이야말로, 번거로운 교류 없이도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관심받을 수 있는 꿈 같은 도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람과의 교류에 지치는 이유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인간 코스프레를 해야 한다’ 같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상대의 기분이나 상황에 맞춰 적절한 말을 고르고, 적절한 타이밍에 꺼내고, 집에 돌아온 뒤에도 ‘아까 그 말은 그 사람에게 실례였던 건 아닐까’ 하고 혼자 반성회를 열게 되는 것처럼, 특정한 누군가의 마음을 계속 고려하며 행동해야 한다는 점도 크다고 생각해요.
그에 비해 창작이라는 건 ‘이 커플링과 열린 결말을 밥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 같은 대략적인 독자층은 상정하지만, 특정한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며 말을 골라야 하는 일은 없어요. 기본적으로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써서 인터넷 같은 곳에 던져 놓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보면 꽤나 일방적인 행위죠.
그런데도 그렇게 던져 놓은 것을 누군가가 주워 읽고 ‘이거 재미있었어요’ 하고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나타나는 그 자체가 마치 드림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 창작의 고마운 점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의 제가 만약 토끼였다면 멸종 위기 수준으로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셈인데도 그 생활을 그렇게까지 외롭다고 느끼지 않고 그저 편하다고 느끼는 건, 제가 던져 놓은 글을 읽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이 원하는 형태의 교류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작품에 댓글이 달리는 순간만큼은 적어도 혼자가 아닐 거예요.
일반적인 교류에 자신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면, 커뮤니티 사람들과는 수다로 교류하기보다는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교류하는 것이 가장 좋고, 그렇게 해서 유명해지면 자연스럽게 누군가가 먼저 불러줄 일도 생길지 몰라요.
모처럼 ‘창작’이라는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도구를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직접 교류’라는 난폭한 말을 멀리서 바라보다 외로움에 빠지기보다는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해 보세요.
창작물을 발표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교류라고 생각해 보면, SNS 등에 나타나는 커뮤니티 동향에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코멘트를 달고 있는 시간은 사실 가장 큰 낭비예요.
다른 사람의 푸념을 보며 ‘그럴 시간에 작품이나 쓰지’라는 머릿속 태클이 떠오른다면, 그 말을 그대로 자신에게 돌려 창작에 힘을 쏟아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