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에서 얻는 질투의 새로운 발견. 질투에는 ‘발작형’이 있고 남의 성공은 늘 부럽다 /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상담

글/ 카레자와 카오루
어떻게 하면 남의 재능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예전에 제가 ‘고통 없이 창작을 하고 싶다는 건, 건강하게 각성제를 하고 싶다는 말과 다름없다’고 별생각 없이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부분이 화제가 되어서 많은 창작자가 공감해 주신 적이 있어요.
제가 대충 던진 말이 이렇게까지 공감을 받은 건 ‘못생긴 사람은 우산도 안 쓴다’라는 폭언을 한 이후 처음이에요.
정말로 중독자 같은 비장한 마음으로 창작에 임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괜히 무서워지고 ‘그냥 그만두는 게 어때?’라고 친척이라도 된 것처럼 말려주고 싶어졌죠. 하지만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 오히려 창작을 더 각성제처럼 느끼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참고로 ‘각성제도 마음만 먹으면 건강하게 할 수 있다’라는 댓글이 달린 것도 무서웠어요.
결국 태초부터 의존하는 성향을 보이는 우리가 각성제에 손대서 고통받는 대신, 창작이라는 합법적인 영역에 뛰어들어 괴로워하고 있는 건 오히려 운이 좋은 편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어쨌든 창작하는 사람의 90% 정도는 쾌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중에서 쾌감만 누리고 싶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괴로움의 주요 성분 중 하나인 질투를 없애는 것도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아요.
‘어떻게 하면 남의 재능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묻는 시점에 이미 ‘질투를 초월해서 내 창작에만 몰두하고 즐기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늘 등장하는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의 관우가 ‘그런 건 없어’ 하고 단칼에 잘라버리고, 아이젠이 ‘언제부터 질투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나?’라고 정색하며 대답하고, 마지막으로 도구로 동생이 ‘설마 아직도 질투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라고 한심하다는 듯 바라볼 거예요.
물론 질투를 초월하는 방법이 아예 없다고는 단언은 못 하겠지만, 그 길을 목표로 한다면 두드려야 할 문은 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불문(佛門)’이 아닐까요? 그러나 좌선 같은 수행에 몰두하다 보면 정작 창작할 시간이 없어질 것 같아요.
결국 창작에 따르는 괴로움, 특히 질투는 의사가 온화한 얼굴로 ‘잘 관리하면서 지내봐요’라고 말해주는 현대 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만성질환’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질투에는 ‘발작형’이 있다
다만, 창작 활동 중에 질투를 겪는 사람들 상당수는 ‘발작형’인 것 같아요.
이런 유형은 기본적으로 기분 좋게 창작하고, 받은 북마크나 감상문에도 감사와 감동하죠.
그런데 문득, 자신에게 없는 재능을 가진 누군가가 자신은 꿈도 못 꿀 성공을 거두는 걸 보면 갑자기 그 모습이 시야에 들어와서 맹렬하게 질투심이 폭발해요.
그러면 순식간에 자신이나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무너지고, 더군다나 그게 단순한 시샘이라는 걸 자기 자신도 알기에 자괴감에 빠져드는 ‘발작’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저처럼 발작이 워낙 자주 터져서 의사가 ‘만성’이라고 오진할 정도라면, 창작을 업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 한 번쯤은 창작에서 떨어져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즐겁게 창작하다가, 가끔 일어나는 발작이 괴로운 정도라면, 발작은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거라고 어느 정도 체념하고, 어떻게 하면 발작을 빠르게 잠재우고 즐거운 시간을 더 길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질투를 빨리 없애는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에 대한 재평가’예요.
일단 마음껏 질투심에 빠져들었다가 불길이 좀 약해졌을 때 ‘나도 많지는 않지만 내 작품을 응원해 주는 독자가 있고, 실제 독자보다 독자가 10배쯤 더 있는 것처럼 환각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있는걸’하며 ‘나도 나름 쓸만해’라는 마음으로 질투를 덮어씌워 진정시키는 거예요.아마 당신도 ‘그래도 좋아요 수는 내가 더 많잖아’ 같은 방식으로 결국은 자기 강점이나 이기는 부분을 떠올리며 질투를 억누르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질투와 싸워 왔는데, 최근에는 질투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됐어요.
예전과 똑같은 빈도와 온도로 화가 난다
이건 완전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얼마 전에 제 만화의 드라마화가 발표됐어요.
아직은 ‘방영 시기도, 방송국도, 출연진도 아무것도 말할 수 없지만 일단 드라마화는 된다고 우기고 있다’ 같은 상황이라 망상이라는 소문도 부정할 수 없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정신을 약간 내려놓고 질투에서 해방됐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제 만화가 드라마로 만들어지게 됐으니, 다른 작품의 영상화 소식을 듣고 질투하지 않게 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예전과 똑같은 빈도와 온도로 화가 난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물론 ‘나도 드라마화하잖아!’라고 질투를 잠재울 수는 있지만, 질투 자체가 생기는 데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해요.
다시 말해 ‘내 성공’과 ‘남의 성공을 보고 느끼는 질투’는 완전히 다른 거예요. 내 작품이 아무리 잘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아도, 문득 눈에 들어온 다른 사람의 성공이 부러워지는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는 거죠.
설령 pixiv에서 톱랭커가 돼서 ‘오히려 네가 작가 아니냐’라는 칭찬을 받는다 해도 ‘질투가 많은’ 근본적인 성격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얘 그림도 별로고, 매번 친구인 것 같은 3명만 좋아요 누르는 게 전부인데 왜 이렇게 신나게 그리는 거야?’같은 이유로 열 받는 일이 생긴다는 거예요.
데즈카 오사무 선생님이 신인 작가들에게 경쟁심을 숨기지 않았다는 것도 ‘내가 만화의 신인 것과 이 신인 작가의 만화가 재밌는 것’은 전혀 별개였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어요.
물론 성공할수록 질투를 잠재우는 스킬은 능숙해져요.
하지만 애초에 전혀 다른 종류예요. 예를 들어 음식이 너무 짜서 소금을 많이 넣은 걸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설탕을 잔뜩 넣는 식이라고 할까요. 그 덕에 짠맛이 약해졌다고 해도, 이번엔 설탕의 단맛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거죠.
그나마 상쇄에 성공하면 괜찮지만, 만일 실패라도 한다면 ‘이 작품 댓글엔 센스 넘치는 말이 넘쳐나는데, 왜 내 작품 독자들은 ‘좋음이 너무 좋군’처럼 머리 아픈 멘트만 남기는 거야? 너희들의 한심한 어휘력 때문에 내가 이렇게 초라해지잖아’라며 자기가 받은 평가나 평가를 해준 사람들까지 무가치하게 여기거나 오히려 마이너스로 느낄 수도 있어요.
애초에 ‘완전히 다른 것’이니까 ‘내 작품에도 내 나름의 장점이 있어’라는 식으로 창작을 통해 질투를 없애려 하기보다는 전혀 다른 걸 부딪쳐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참고로 저는 요즘 질투심에 시달릴 때 ‘잠’을 자려고 해요.
‘먹기’, ‘야한 생각 하기’ 같은 방법도 좋다고 생각해요. 질투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차라리 그보다 더 강한 3대 욕구를 들이밀어서 이겨보는 거죠.

↑일본어 이외의 고민 상담도 환영합니다.
이 시리즈가 단행본으로!
인기 시리즈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 상담’이 ‘오타쿠의 즐거운 창작론’(문학춘추 출판)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화 되었습니다!
‘원작을 무시한 2차 창작이 걱정돼요’, ‘마이너 장르라 독자들이 별로 없어요’, ‘40대면 동인 행사 그만둬야 할까요?’, ‘최애를 죽이고 마는 모순과 고뇌’ 등 인기 상담은 물론 신작에 대한 고민까지 담겨 있습니다.



제 고민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재능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예요.
저는 한 만화의 2차 창작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작품이 ‘해석이 세밀하다’던가 ‘마치 원작 캐릭터가 그대로 움직이고 말하는 것 같다’라는 평가를 받는 걸 보면 이를 갈 정도로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설령 내 작품이 좋아요 수가 더 많다고 해도, 묘하게 그 사람이 ‘이 판에서 더 인정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물론 사람마다 개성과 장점이 다르고, 저에게는 해석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사소한 일에도 매번 기가 죽어버리는 제 자신이 싫어요.
제 마음을 잘 추스르고 자신감을 갖고 창작 활동을 하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