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을 객관적으로 못 봐요’ 애초에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한가? /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상담

글/ 카레자와 카오루
비교 대상이 없어서 자신의 그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어요
이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건, 이 세상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온리원이면서 넘버원’인, 다시 말해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마이너한 장르를 파면서 파란 콧물을 흘리며 고군분투하는 창작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에요.
우선 핵전쟁 이후 같은 황폐한 땅, 게다가 지프가 하루에 30번쯤 왕복할 것 같은 곳에 튼튼히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고 있는 그 모습에 경례하고 싶어요.
같은 땅에 나란히 선 다른 꽃이 없으니 비교할 수도 없고, 내 작품이 진짜 금인지 금붕어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상업지에서 오리지널 만화를 그리고, 제 오리지널 캐릭터를 그리는 만화가예요.
pixiv에서 제 작품이나 캐릭터 이름으로 검색하는 건, 마치 중고 거래 앱에서 제 이름을 검색하다가 이름까지 적힌(모자이크 처리된) 사인본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무서울 것 같아서 안 하고 있거든요. 혹시나 계신다면 죄송하지만, 적어도 pixiv에서 제 작품의 2차 창작을 하는 분은 거의 없으리라 짐작해요.
다시 말해, 저는 ‘저’라는 장르 안에서 10년 넘게 거의 유일하게 제 캐릭터를 그리고 있는 괴짜라는 얘기예요. 그런 점에서 보면 제 입장은 당신과 비슷한 셈이죠.
그 탓에 온갖 감정, 구체적으로는 기쁨이나 즐거움 같은 걸 잃어왔지만, 이상하게도 제 그림이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아직도 제 서투른 그림에 질릴 때가 많고, 다른 작가들과 비교하면 그냥 ‘전부 나보다 잘하네’라고 생각해요.
물론 완전히 다른 장르, 다른 캐릭터 그림과 비교한다는 건 야구 선수랑 축구 선수를 비교하는 거랑 비슷한 일이에요. 특히 당신은 같은 종목에 뛰는 경쟁자가 하나도 없는, 이를테면 ‘눈 가리고 봅슬레이’ 선수 같은 상황이라서 비교가 더 어렵겠죠. 하지만 스포츠로 치면 ‘운동신경’에 해당하는 ‘그림 실력’은 소재가 달라도 어느 정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자기 수준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지금은 사람 형태 생물끼리의 커플링이라고 가정하고 말하긴 했는데, 만약 그 작품에만 존재하는 미확인 생물들끼리의 커플이라면 확실히 남과 비교하기도 어렵고 그림 실력 면에서도 잘 그린 건지 못 그린 건지도 헷갈릴 것 같아요.
하지만 거기까지 가면 이미 비교 불가능한 아트의 영역이잖아요. 그러니까 최애를 얼마나 난도질해 놓았든 ‘이건 큐비즘이에요!’라고 밀고 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한가?
솔직히 당신 작품을 직접 보고 판단해 주고 싶지만, 아마 ‘나보다 잘 그린다’는 결론이 날 것 같아요. 반대로 제가 ‘당신은 프리X처럼 ‘인체를 알기 위한 여행’을 천 년 단위로 다녀와야 해요’라고 한다면 ‘굶어 죽어도 너한테만은 그런 말 듣기 싫거든’이라 생각하시겠죠. 어느 쪽이든 자학 혹은 남에게 상처 주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정말로 당신에게 ‘객관적 시선’이 필요할까요?
객관적 시선이 필요한 건, 말 그대로 ‘손님’을 만족시킬 작품, 즉 많은 사람이 보고 만족할 만한 작품을 그리고 싶을 때예요.
당신의 사연을 보면, 남의 눈길을 조금은 의식하긴 해도 ‘밖에 나가니까 바지 정도는 입어둘까?’ 수준이고, 애초에 평생 집 밖에 안 나가도 전신 거울에 비친 새빨간 보디를 보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자기 작품에 대한 압도적인 확신을 느낄 수 있어요.
온리원이자 넘버원을 파는 사람들 중에서도 ‘다른 사람이 없는 장르라 자급자족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이 그린 내 최애 커플링을 보고 싶으니 이 동네에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는 이들이 많은데, 당신에게서는 그런 바람조차 느껴지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지 않고도 창작을 꾸준히, 그것도 만족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고, 이건 노력으로 얻기 힘든 일종의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괜히 남을 의식하기보다는 그 재능을 살려 활동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작품의 퀄리티를 올리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자기 긍정감’을 올리는 건 그보다 더 어려운 경우도 있어요. 누가 봐도 지나치게 말랐는데도 스스로를 뚱뚱하다고 하는 사람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 추구미는 나무젓가락’처럼 목표가 너무 높거나, 자기 긍정감이 지나치게 낮은 경우예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객관적으로 잘 그린 그림이라도 스스로를 긍정할 힘이 없으면 못 그린 것처럼 보이고, 캐해가 완벽하다며 신날 수도 없어요.
남들이 아무리 인정해 줘도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지 못한다면 창작 활동이 즐거울 리 없죠.
아무리 봐도 흠잡을 데 없이 귀여운 내 아이를 굳이 남에게 평가받고 ‘치열이 아쉽네’ 같은 소리 들어서 기분 나빠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완벽했던 내 아이의 치아 틈새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최악이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이 취미 창작은 자기만족이 우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을 그리지 못해 괴로워하는데, 오히려 당신은 취미로서의 창작을 하는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굳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개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자신이 보기에 더 황홀한 상태에 이르고 싶다면 그림 실력을 늘려보는 걸 생각해 봐도 좋겠죠.
그림 실력을 올리려면 결국 많이 그리는 수밖에 없어요.
즉, 지금까지 해온 대로 최애 CP를 열심히 그려나가면 된답니다.

이 시리즈가 단행본으로!
인기 시리즈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 상담’이 ‘오타쿠의 즐거운 창작론’(문학춘추 출판)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화 되었습니다!
‘원작을 무시한 2차 창작이 걱정돼요’, ‘마이너 장르라 독자들이 별로 없어요’, ‘40대면 동인 행사 그만둬야 할까요?’, ‘최애를 죽이고 마는 모순과 고뇌’ 등 인기 상담은 물론 신작에 대한 고민까지 담겨 있습니다.



온리원 CP(눈팅 계정이 겨우 손에 꼽을 정도)로 혼자 떠드는 계정에서 일러스트를 올린 지 벌써 2년이 넘었어요.
요즘 제 그림이 ‘그럭저럭 봐줄 만한 수준’인지 아니면 ‘낙서보다 못한 저퀄리티’인지 스스로 판단하기가 힘들어졌어요.
공급이 너무 적은 데다가, 최애 CP에 대한 제 감정이 미친 듯이 만렙에 도달해서 제 작품을 볼 때 ‘내가 그린 거’라는 디버프 필터를 뚫어 버리고 마냥 ‘캐해(캐릭터 해석) 완벽! 최고!!’ 하고 너무 들떠버리는 바람에 차분한 판단이 안 서는 상황이에요. 이러다 혹시나 제 최애를 복잡골절 수준으로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사라지질 않고 있어요.
‘내가 만족하면 그걸로 좋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그래도 누군가의 눈길을 조금이라도 받는 이상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고치고 싶기도 해요.
진짜로 최애의 꾸금 그림 말고는 손댈 의욕이 하나도 안 나서 첨삭 의뢰 같은 것도 못 하고 있고, 좋아요 수 같은 눈에 보이는 기준도 같은 장르의 창작자가 없어서 비교할 수 없어요.
자기 그림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한 요령 같은 게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