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의 열정에 감동받은 ‘기억에 남는 행사 추억’ / 이소후라본 히지키의 이야기

글/ 이소후라본 히지키
지방에도 동인 행사는 존재한다
오늘의 테마는 ‘기억에 남는 행사 추억’.
첫 동인 행사에 참가한 지도 벌써 거의 10년이 지났지만, 실제로 내가 제작한 책이나 참가한 행사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한데, 오랫동안 지방에 살았던 터라 참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고 작업을 하다 보면 계획성이라곤 1도 없이 태어난 타고난 내 본성이 발휘되어 늘 극단적인 마감에 시달린 끝에 ‘동인지… 만화는 너무 힘들어! 다신 안 해…!’ 라는 굳은 다짐을 해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 결심이 효력을 발휘하는 기간이 대략 1년 정도였던 터라 나의 행사 참가는 1년에 한 번꼴이 되었다.
그 덕에 ‘행사 한 번당 책 한 권’이라는 페이스로 여유롭게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 느긋한 내 동인 라이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 추억을 하나 꼽으라면, 내가 부스 참가를 한 행사가 아니라 송구할 따름이지만 친구를 따라 참가한 지방의 한 동인 행사를 꼽고 싶다.
동인 행사라고 하면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같은 대도시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지방에도 동인 행사가 존재한다. (물론 수는 줄고 있지만.)
친구는 이른바 존잘님으로 유명했는데, 얼마 전 오사카 행사에서 순식간에 품절된 책을 재판매할 생각인데 조금 여유롭게 있고 싶으니 지방 행사에 참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도 책팔이 도우미로 함께 참가하게 되었다.
내가 구매자 입장이라면 ‘뭐, 지방 행사라고?! 오사카나 도쿄로 오라고!’라고 외치고 싶은 심경이겠지만, 판매 장소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도 동인 행사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친구 집에 묵으면서 코타츠에 들어가 원고 작업을 했고(당시는 아날로그 시대였다. 나는 잉크를 쏟았고 대역죄인이 되었다.) 난생처음 가본 동네에서 처음 보는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첫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에는 행사에 협조해 준 군부대의 지프가 전시되어 있었고, 행사장 절반을 나눠 코스프레 부스도 마련되어 있었다. 지방 특유의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져 있어 내 고향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퍽 흥미로웠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책 판매. 당연하게도 오사카에서 팔리던 페이스와는 전혀 달랐지만, 본인들은 만족하고 있었다. 그저 친구를 따라온 것뿐이었던 나는 마치 몰래 떠나온 여행지에서 모든 속박을 벗어던지고 즐기는 인기 아이돌을 보는 매니저가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책을 사러 도쿄에서 왔어요!’라며 열정 넘치는 사람도 있었고,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이런 장르의 행사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도 있었다. 꽤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지방 행사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애초에 참가하는 부스 자체가 굉장히 한정적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장르의 작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기념으로 코팅 팬시를 사지 않을 수가 없다. 아, 코팅 팬시는 이제 없나.
오타쿠 행사, 어쩜 이리도 열정적인가!
행복하게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크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우리를 아랑곳도 하지 않은 채 코스프레 부스에 마련된 무대에서 코스프레 퍼포먼스 대회가 시작됐다. 우리는 너무 놀라 벙찌고 말았다.
그들은 그저 단순히 높은 곳에 올라가 코스프레를 어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단체로 합을 짠 댄스 공연을 하거나 음악에 맞춰 관객에게 사탕이나 껌을 뿌리며 열정적인 축제를 벌였다.
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이런 지방에는 의상 대여 스튜디오도 없을 텐데, 방과 후나 쉬는 날에 다 같이 모여 의상을 만들고 퍼포먼스를 연습한 걸까? 오로지 이 행사, 이날을 위해서.
사실 코스프레 퍼포먼스뿐 아니라 책이나 굿즈도 모두 ‘이날 팔겠어!’라는 굳은 결의로 만들어진 것들뿐이었다.
일반 참가자들 역시 ‘이번 행사에서 끝내주게 덕질 해야지!’라는 각오를 하고 비교적 산속에 위치한 행사장까지 하나둘 모여들었을 것이다.
동인 행사란, 오타쿠 행사란 어쩌면 이리도 열정이 넘칠까.
지방에서 도쿄로 거처를 옮긴 나는 덕질, 특히 동인 행사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도시에 사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지방에서 도시로 나가는 장애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리다면 가족을 설득해야 하고, 왕복 교통비로 2~30만원씩이나 써가며 도쿄나 오사카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그 행사에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뼈저리게 느낀 오타쿠의 열정과 애정은 도시 행사든 지방 행사든 모두 똑같은 것이었다.
행사에 자주 참가하다 보면 여러 일들에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그때의 그 열정적인 마음처럼 책과 굿즈, 그리고 오타쿠와의 만남에 설레고 싶다.
최근에는 너무 익숙해지다 못해 낯짝이 두꺼워진 건지 준비물도 다 까먹고 갈 때가 있다. 결국 박스 테이프로 가격표를, 빈 과자 통으로 거스름돈 통을 대신하고 있는 지경이다. 더 설레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