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찐덕에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양보하는 오타쿠에 대하여’ / 이소후라본 히지키의 이야기

글/ 이소후라본 히지키
이번 테마는 ‘양보하는 오타쿠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양보하는 오타쿠란 무엇일까?
이 테마를 보내준 분에 따르면, ‘좋은 듯?’ 정도의 텐션으로 굿즈 추첨을 하거나 랜덤 굿즈를 사서 그럭저럭 좋아하는 캐릭터의 굿즈가 나왔을 때, 그 캐릭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양보해 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또, 친구와 좋아하는 게 겹치면 ‘아, 난 완전 찐덕은 아니라서…’라며 마치 최애에서 한 발짝 물러난 듯한 태도를 취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착한 척하는 것 같아 자책하게 된다고 한다.
솔직히 이 사연을 받았을 때 나도 ‘아, 나도 그런 적 있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꽤 공감되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여기서 바로 ‘오타쿠의 애정은 남과 비교할 수 없어! 자신만의 페이스로 좋아하는 마음을 소중히 해야지!’라는 지극히 옳은 말로 결론지을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지 그 부분부터 들여다보고자 한다.
석가모니에게 ‘불교 대박이지 않아?’ 하는 느낌
애초에 오타쿠가 아니더라도 보편적으로 대부분 ‘진심인 사람 앞에서 애매한 자신이 부끄러워!’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석가모니 앞에서 ‘불교 대박이죠? 교리가 너무 좋아서~’라고 설명하려고 하는 맹렬한 민망함이 속담으로까지 전해질 정도니, 무언가에 대해 자신보다 더 열정적이고 뛰어나다고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한발 물러서며 존경을 표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 미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콘텐츠로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사람, 더 강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 우선되어야 하고 보답받아야 해’라며 자신이 좋아해서 얻은 굿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 양보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라이브에서 깜짝 게스트가 등장했을 때, 나름 즐겁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순간을 열렬히 기다렸을 그 사람이 이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걸까…?’ 하고 당황하거나, 열정적인 팬이 콘텐츠 재개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다행이라며 안도하게 되기도 한다.
결국 ‘나는 이 매력을 충분히 느끼지 못할 거야, 찐덕의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거야…!’라는 예측과 회피 행동이 찐덕에게 양보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는 게 아닐까? 냉정하게 생각하면 모든 일에 그렇게 힘을 줄 필요는 없는데도 말이다.
친구와 같은 아티스트, 같은 아이돌, 같은 작품, 같은 캐릭터에 빠지게 되면 은연중에 한발 물러나게 되는 것은 애정의 강도를 비교하게 되는 탓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원활한 인간관계와 편안한 멘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애정을 굳이 비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보니, 본심을 깊이 숨겨두고 겉으로는 평온함을 유지하려는 것일 것이다.
‘좋아하지만 참고 양보했다’는 전해지지 않는다
내 경우는 어떤가. 사실 취향이 딱 맞는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나 역시 내가 좋아서 뽑은 랜덤 굿즈를 친구에게 쉽게 양보하는 편이다.
그리고 나중에 역시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에 교환해 줄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싶어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진짜 주는 거야?!’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본 시점에서 이미 용서받은 듯한 느낌도 든다.
마치 전설의 검을 ‘나에겐 안 어울려’라며 더 어울리는 전사에게 넘겨주는 수호자의 마음 같은 거랄까.
스스로 ‘더 어울리는 사람’의 기준을 만들어서 거기에 맡기고 안도하는 셈이다. 수호자는 그 후에 똑같은 검을 다시 구하러 다니진 않겠지만.
이 테마를 보내주신 분은 이런 ‘양보’에서 상대에게 잘 보이려는 자신의 얄팍함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 별로 상대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거나 그렇게까지 잘 보일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은 ‘좋아하지만 참고 양보했다’라는 걸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랜덤 굿즈에서 내 최애가 나왔는데 딱히 필요 없어서 나한테 줬다! 럭키! 해피! 윈윈! 센스 있네! 정도로 생각하겠지. 생각보다 적지 않은 금액의 랜덤 굿즈를 가볍게 살 수 있는 우리는 사실 뭔가를 양보했다고 칭찬받은 나이는 아닌 것이다.
어쩌면 죽어서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심판의 순간에 ‘이 사람은 자신도 갖고 싶었던 아크릴 스탠드를 친구에게 양보하는 다정함을 가졌군…’하며 특별 가산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부터 솔직하게 ‘사실 나도 이 캐릭터가 좋아! 나도 갖고 싶어’라는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편이 오타쿠 생활을 더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게 무슨 얘기였더라. 나 자신도 포함해서, 양보하게 되는 오타쿠들에 대한 얘기였지.
기뻐하는 상대의 얼굴을 보고 ‘괜찮지, 뭐’하고 넘어갈 수 있다면, 그것도 오타쿠로서 하나의 방식이리라. 양보라는 행위는 어떠한 부담이나 압박을 하나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매번 양보한 자신을 향해 ‘또 양보해 버리다니, 난 왜 이럴까?’ 하고 자책하게 된다면, 한 번쯤은 ‘양보하지 않는’ 시도를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나는 동인지를 배포할 때도 마지막 한 권이 남으면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단 필요한 독자한테 줘야지!’라며 내놓는 경우가 많아서 내 손에 남아있는 내 책이 거의 없다. 난 대체 왜 항상 이러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