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인생은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오타쿠와 라이프 스테이지’ / 이소후라본 히지키의 이야기

글/ 이소후라본 히지키
‘다들 오타쿠니까 나랑 같을 거야’라는 착각
오늘의 주제는 ‘오타쿠와 라이프 스테이지’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취미를 공유하고 즐겁게 지냈던 친구들과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위치나 경험이 다르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하게 된다.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고 말이다.
인터넷 덕분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10년, 20년씩 이어지는 것이 이제 놀랍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어디에 살고 있든지 가볍게 소통할 수 있다는 압도적인 장점이 있는 반면, 가끔 만나는 정도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그들의 ‘인생 발자취’를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과 비교하게 된다.
다들… 언제 이렇게 제대로 ‘인생’을 살고 있었던 거야?!
최근 들어 모르는 사이에 결혼을 한 친구부터 승진했다, 아이가 엄청 자랐다, 이직했다 등등…. 주변 사람들의 라이프 스테이지가 급변하고 있는 시기이다.
반면 나의 인생의 변화라곤 고작 ‘일을 관뒀다…? 이사했다…?’ 정도.
어제 뭐 했더라? 지난달엔 뭐했더라? 하는 정도로 내 인생을 희미하게 인식하고 있는데, 왜 남의 인생은 엄청 빠르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게 당연하다면 그런 거겠지만.
학교나 회사, 이웃처럼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현실 세계’에서는 설령 라이프 스테이지가 달라도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모두’라는 범주가 세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각자 상황이 다르겠지’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자주 만나지도 않는, 어느 정도 라이프 스테이지와 분리된 ‘취향’이라는 공통점으로 엮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왠지 모르게 ‘다들 똑같잖아?!’라고 생각해 버린다.
다들 오타쿠니까 나처럼(예: 퇴근하자마자 바로 원고 작업하고 취침, 칼퇴하자마자 원정 떠나기, 알바와 게임센터를 왕복하는 삶 등) 살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오타쿠 역시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다 똑같을 리가 없는 게 당연하다.
다양한 어른 샘플 중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자
사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라이프 스테이지에 크게 동요하는 편은 아니다.
작년에 인생 첫 독립을 시작하고 열심히 오타쿠 생활을 하며 바쁘게 지낸 1년 동안, 이사를 축하해주러 집들이에 왔던 친구는 결혼하고 엄마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내가 어릴 때부터 비교적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어른들 사이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어른, 취미에 몰두하는 어른, 친구와 함께 아이를 키우는 어른 등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준 어른들 덕분에 내 인생이 크게 변하지 않더라도 ‘아, 나도 저 어른들처럼 즐겁게 살고 있는 걸지도 몰라’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외롭지 않다.
물론 그들 역시 아무런 갈등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닐 테지만, 내가 그들에게서 용기를 얻었던 것처럼 내 삶의 방식도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샘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유행하는 핫한 장르처럼 새로운 콘텐츠가 없어도 괜찮다
애초에 왜 라이프 스테이지가 변하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초조해지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자극이 없다’는 느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아들이 결혼하고 손자가 태어났을 때 우리 가족은 엄청난 격동의 한때를 보냈다.
마치 완결된 지 13년이나 지나 소식이 없던 애니메이션 공식 계정이 갑자기 팝업 스토어를 열기라도 한 것 같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설마 행사도 하는 거 아냐~?!
들뜬 가족들은 이걸 사자, 저걸 사자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바빴고, 팬미팅까지 열리면서(아기의 무병장수를 기원하여 함께 절에 갔다) 분위기는 한층 뜨거워졌다.
나 혼자 멀리 떨어져 살아서 그 축제 분위기에서 약간 소외된 느낌이 있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며 ‘역시 새로운 전개가 있으면 커뮤니티가 활기를 띠는군!’하고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즉, 내 인생이 지금 정체된 것 같다거나 주변 사람들에 비해 인생이 크게 변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초조함은
매일매일 소식이 업데이트되는 요즘 핫한 장르와 조용하디조용한 내 장르와의 갭에서 오는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콘텐츠가 계속 활발하게 업데이트되어서 바쁜 오타쿠들은 정말 부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특별히 새로운 일이 벌어지지 않는 평온한 장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오타쿠라면 알게 될 것이다.
큰 변화가 없는 장르에는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는 법이다.
오랫동안 평온한 장르를 즐기던 오타쿠가 드물게 요즘 핫한 장르에 빠져 숨이 벅차 힘들어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속도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계획에 없지만, 그렇지만 인생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타쿠로서 새로운 취향의 작품을 만날 수도 있고, 핸드메이드를 시작해 인형을 만들지도 모른다. 아니면 갑자기 코스프레에 도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날마다 성장하는 조카에게 지지 않기 위해…!’ 까지는 아니겠지만, 오타쿠 스테이지를 변화시키는 것은 의외로 자기 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라고 깨닫기 시작한 요즘이다. 고로 앞으로의 나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거는 중이다.
그리고 변화가 없더라도 분명 즐거울 수 있다고 믿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