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시간은 자기 하기 나름 ‘오타쿠와 스케줄’ / 이소후라본 히지키의 이야기

글/ 이소후라본 히지키
버스 시간까지 무의미한 배회를 반복하던 나
오늘의 테마는 ‘오타쿠와 스케줄’이다.
테마를 응모해 주신 분은 ‘스케줄을 잘 짜지 못해서 행사 전후나 빈 시간 등 무의미한 시간이 생기곤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라고 고민하고 있다고.
행사를 보러 먼 지역에 가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타입, 일단 유명하다고 하니 먹어볼까?라며 먹어보는 타입, 일정만 끝내면 그만인 타입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예전에는 일정을 잘 짜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잘 짜지 못한다기보다는 시간을 잘 가늠하지 못하는 편이었다고 할까….
지방에 살고 있는 터라 행사나 공연 등에 가는 왕복 교통편의 시간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야간 버스는 하루에 한 대뿐이라 놓치면 끝이기 때문에
좀처럼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거기에 가볼까?’ 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 결과, 행사 등의 용무가 끝난 후에는 출발 예정 시간까지 버스터미널 근처를 무의미하게 배회하며
마치 아무 맛도 없는 모래를 씹는 듯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15시에 신주쿠에 도착했지만 딱히 돈도 없는 터라 돌아다니며 아이쇼핑만 하다가 다리에 불이 나거나,
내가 사는 곳에도 있는 체인점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좀 더… 뭔가 할 수 있지 않아…?!
조금이라도 빨리 ‘○○에 갔다가 돌아와도 시간이 맞겠지?’라는 결단을 했다면 좀 더 충실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만 가고, 집에 돌아올 때쯤에는 ‘뭐, 행사는 즐겁긴 했는데….’라는 약간의 후회를 하곤 했다.
하루의 만족도를 높이는 건 자기 하기 나름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냐고? ‘행사는 오타쿠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맛있는 음식은 꼭 먹을 거야!’라는 의욕이 생겼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인지, 공연 관람 등으로 먼 곳에 갔을 때는 그 지역의 명물을 먹는 것이 아주 즐겁다는 사실을 비소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식사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행사에만 의존하지 않더라도 자기 행동에 따라 하루의 만족도는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친구 등 동행이 있다면 가보고 싶었던 관광지에 가거나 지역 명물을 먹고, 뒤풀이를 하며 즐길 수 있겠지만
혼자 행동하는 경우에는 순전히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본인이 얼마나 노력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어쨌든 주요 일정 외에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가?’라는 것을 1개 혹은 2개 정도 정해서 역산한다면 의외로 스케줄을 짤 수 있을 것이다.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나도 할 수 있다!
예전에 오사카에 공연을 보러 갔을 때 갑자기 ‘저녁 공연이니까 교토에 있는 지인을 만나러 갔다 와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놓치는 게 무서워서 신주쿠에서 5시간이나 배회했던 내가, 육로로 연결되어 편리하다고는 하지만 도시의 경계를 넘어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것은 상당히 큰 도전이었다.
지인에게 연락하고, 교통편을 알아보고,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주택가를 걸은 끝에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늦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 분 전에 출발해야 한다고 미리 계획을 짜뒀는데, 그 계획을 크게 오버할 정도로 지인과의 수다가 너무 즐거웠던 나머지
‘어, 시간 괜찮아?’라는 지인의 말에 반사적으로 ‘괜찮아요!’라고 대답해 버렸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티켓이랑 왕복 비용이 얼마인지 알고나 있냐!)
해야지! 라고 결심하고 행동에 나서면 이렇게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먼 도시까지 올 수 있구나.
교토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편의점에서 산 주먹밥을 서서 먹긴 했지만….
어쨌든 나도 한다면 할 수 있어! 멋진 시간을 보냈어! 라는 행복감으로 가득 차서
‘공연 시작 전에 못 가도 괜찮아… 인터미션 때 들어가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점점 오사카에 가까워질수록 ‘아니, 전력 질주하면 되지 않을까?’라며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뭐 때문에 오사카까지 왔는가!
조금이라도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짐을 작게 움켜 안고, 내가 생각해도 도대체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솟아났는지 신기할 정도로 전력 질주를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극장에 도착했을 때는 공연 시작을 10분 앞둔 시간이었다.
그때의 그 엄청난 성취감이란….
아침 일찍 신칸센으로 출발한 후 하루도 안 되서 오사카에서 교토로, 그리고 오사카로 돌아와 공연 관람.
이게 정말 평소 집에서 멍때리며 보내는 하루와 이 하루가 같은 하루라니….
충분히 좋은 하루였다며 마무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커튼콜까지 만끽하며 결승선을 끊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역에서 꼬치 튀김까지 먹었던 것 같다. 진짜 하고 싶은 거 다 했네.
빈 시간을 보내는 방법, 스케줄을 짜기 위한 방법은 스스로 의식하지 않으면 한정된 것만 하기 십상이다.
지인이나 인터넷에서 배워 새로운 시각을 얻는 것도 만족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물론, 무리하게 일정을 꽉 채우다 보면 나처럼 오타쿠 트라이애슬론 데이가 되어버릴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더하든 빼든, 자신의 역량에 맞는 하루를 보내는 게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