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에 대비해서 건강 공덕을 쌓아라! ‘오타쿠와 건강’ / 이소후라본 히지키의 이야기

글/ 이소후라본 히지키
오타쿠도 건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다
오늘의 테마는 오타쿠와 건강이다. 오타쿠가 건강할 리가 없잖아…!
아니, 이건 너무 일반화인가. 아무튼, 평소 ‘어차피 다들 집에 가면 앉아서 계속 인터넷만 하잖아? 쉬는 날에는 이불 속에서 폰 만지고 있겠지.’라며 방심하고 있는 터라 ‘원고 작업은 근처에서 조깅하면서 기분 전환 좀 하고 와서 다시 할까?’라는 말을 하는 오타쿠를 보면 너무 당황스러워서 절로 긴장하게 된다.
(이른바 투디 콘텐츠) 오타쿠들은 대부분 집순이집돌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요즘 오타쿠들은 조금씩 ‘건강... 중요하네…?’라는 진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스쿼트를 했더니 집중력이 높아졌어요!’, ‘복싱을 했더니 어깨 결림이 나았어요!’ 등등, 운동을 하면서 밝혀진 진실들이 SNS상에서 솔깃한 정보라며 돌아다니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눈에 그런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은 내 주위의 인간들도 건강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뜻일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고, 사람은 모두 똑같이 나이를 먹으니 말이다.
그럼 나도 건강을 신경 쓰고 있냐고? 음, 그럭저럭...?
스트레칭이나 근력 운동 정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사실 ‘안 하는 것보단 나으니까’라는 마음으로 마지못해 하고 있다.
나 역시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관리하지 않으면 힘들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콜라보 건강 체조’ 같은 콘텐츠가 늘어날까
먼저, 원고 작업이 힘들어졌다.
나는 전형적인 데드라인 증후군 환자인 터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밀어붙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시작할 수 없는 타입이다. 그런데 요즘엔 ‘괜찮아! ○시에 시작하면 다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어리석은) 계획을 지키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예상했던 속도로 작업을 진행하기가 어렵고, 도중에 집중력이 팍 끊겨버리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포기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고 해야 할지….
예를 들면 예전에는 대형 전시장에서 열리는 행사에 가면 ‘기왕 왔으니까 전부 돌아봐야지!’라는 생각으로 모든 홀을 넘나들며 돌아다니곤 했다.
내가 쓰고 있는 만보기 앱에는 지난 8년간의 데이터가 남아 있는데, 날짜순으로 정렬하면 상위에 뜨는 것 대부분이 동인 행사에 간 날이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일반 참가 줄에 서는 게 싫어서 부스 참가를 하고, 원하는 걸 빨리 사 모은 다음 나머지 시간엔 앉아서 부스만 지키고 있다. 이제 A홀에서 B홀을 넘나드는 대이동(10분 정도) 따윈 두 번 다시 불가능하지 않을까.
걷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테마파크를 돌아다니는 일도, 콘서트에서 몇 시간 동안 응원봉을 흔들어 대는 일도, 몇 시간이나 화면을 들여다보는 일도 점점 ‘한계 라인’, ‘내일 내 몸에 끼칠 영향’을 신경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낀다. 오타쿠도 결국 체력에 달린 것이다.
최근에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쪽도 이런 오타쿠들의 건강을 신경쓰고 있는 걸인지 유난히 건강을 챙기는 콘텐츠가 많아진 것 같다.
나 역시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 성우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운동하고, 앱에서 아이돌들과 근력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아이돌 만보기를 사고, 다른 오타쿠들과 스마트워치의 수면 스코어 경쟁을 펼치면서 그 흐름에 제대로 휩쓸려가며 조금씩 건강이라는 ‘공덕’을 쌓으려고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오타쿠들의 스탠더드 콘텐츠로 ‘최애 컬러를 조합해서 꾸밀 수 있는 혈압계’나 ‘콜라보 건강 체조’ 같은 게 계속 생겨날 것 같다.
뭐, 이런 건 어쨌든 시작이 중요하니 결국엔 진지하게 발전해 나갔으면 싶은 마음도 있다.
이렇게 ‘건강 공덕’(적당히 만든 말입니다)을 쌓아가다 보면 오타쿠 활동에 대한 보상이 있을까? 아니, 열정적인 오타쿠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보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아직까지는 운동을 해서 집중력이 올랐다는 느낌은 눈곱만큼도 없다. 아무 소용이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건강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은 있다.
화재 현장의 폭발력은 ‘좋아하는 것’이 만들어 주는 것
작년에 한 콘서트를 보기 위해 야간 버스를 타고 에히메현에서 도쿄로 이동했을 때의 일이다. 가뜩이나 13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인데, 그날은 태풍 때문에 17시간이나 걸렸다. 당연히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진맥진해서 버스 안은 축 처진 분위기였다.
그런데 평소에 운동을 한 덕분일까? 아니면 만화가로서 며칠 내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에 대한 어드밴티지가 있었던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차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신나게 원고 작업을 한 것도 모자라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콘서트장까지 질주해서 무사히 2시간 반 동안 소리 지르며 야광봉을 흔들어댈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어디서 솟아난 체력인지 모르겠다.
오타쿠질을 하고 있으면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옥시토신 같은 호르몬이 격렬하게 분비되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가 될 때가 종종 있다. 아마도 그날의 나도 그랬을 것이다.
바로 그런, 말하자면 불이 활활 타오르는 화재 현장에서의 폭발력은 ‘좋아하는 것’들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오타쿠는 쥐꼬리만큼이라도 남아 있는 체력을 갈고닦아서 그 폭발력에 따라갈 수 있는 육체를 유지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참고로 그날 공연이 끝난 뒤 나는 ‘호텔에서 원고 작업 해야지!’라고 친구에게 야심 차게 외친 선언이 무색하게도 상한 가지처럼 축 늘어져서 죽은 듯이 곯아떨어져 버렸다.
아… 조금만 더 건강했다면 원고 작업을 할 수 있었을까…?(있겠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