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한탄하기 전에 직접 동인 편지지를 만들어 보자 /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상담

글/ 카레자와 카오루
행사에 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질투가 나요
저도 지방러라서 너무 공감해요.
제가 사는 곳은 인구가 좀 있는 동서쪽을 제외하면 거의 황량한 무인 지대인데, 그 한가운데에서 40년 넘게 불법 거주 중인 야만인이 바로 저예요.
당연히 행사 같은 거랑은 전혀 인연이 없는 곳인데도, 드론 같은 걸로 무한하게 펼쳐진 황야를 본 도시 사람들이 ‘여기 사람 불러도 되겠는데?’라고 착각하고 인기 남자 아이돌 그룹을 초대했다가 대량의 귀가 난민을 만들고 SNS 실시간 트렌드에 오른 적도 있죠.
올 장르라고 하면 코믹마켓이나 스파코미 같은 걸 떠올리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올 장르’는 참가 부스 모집 수가 고작 60개인 동인지 즉매회예요.
이 60개 부스 안에 이 세상의 모든 장르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뭔가 너무나도 소우주 같죠. 아마 90%는 점프 계열일 테고, 60 부스를 모집한다고 해서 실제로 60 부스가 다 찬다고 할 수도 없죠.
그런 환경에서 자랐지만, 저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행사에 대한 질투를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제가 오타쿠가 아니라 ‘Popteen’ 같은 잡지를 읽던 중학생은 아니었어요. 저는 4살 때부터 오타쿠였고, 에닉스(현 스퀘어 에닉스)의 독실한 신자였죠. 하지만 제가 사는 황야에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애초에 동인 행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거예요.
질투라는 건 결국 ‘여기 없으면 없는’ 감정이에요. 질투 대상 자체가 없으면 생길 일도 없고, 있다고 해도 내가 모르면 없는 거랑 마찬가지죠.
인터넷 덕분에 지방에 살아도 작품을 올리고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기회가 생겼지만, 동시에 행사나 거기서 즐겁게 노는 사람들도 보이게 되면서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누리는 사람들을 볼 기회도 많아졌고, 질투할 일도 엄청 늘어났어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까 행사 시즌에는 행사 정보나 행사에 참가하는 팔로워들의 움직임을 최대한 안 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요?
물론 아무리 조심해도 눈에 들어온다는 게 인터넷과 SNS의 무서운 점이지만, 혹시 아무런 방어도 안 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 자구책을 마련하는 게 좋아요.
예를 들어, pixiv 프리미엄 유저는 차단하고 싶은 단어를 최대 500개까지 뮤트할 수 있어요. 500개 설정할 수 있다는 건, 실제로 그만큼 쓰는 사람이 있다는 거겠죠. 그 정도로 철저하게 자기 방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도 행사 시즌에는 팔로워를 뮤트하거나, SNS를 최대한 덜 보는 등 질투할 요소를 아예 시야에서 배제하는 노력 정도는 해야겠죠.
하루에 68시간씩 SNS에 들러붙어 있는 저조차도 ‘지금 그 작품 미디어 믹스 발표 소식으로 도배 중이네’ 싶으면 잠깐 거리를 두는 정도는 해요.
‘동인 편지지’를 만든 나, 칭찬해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인터넷이 들어온 황야에서, 저는 행사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어요. 행사에 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할 일도 없었고, 그저 마음껏 최애 얼굴만 잔뜩 그려대며 친구들에게 억지로 보여주다가 질색하는 반응을 받는 게 전부였죠. 그런데 중3 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펜팔’을 시작하고 말았어요.
펜팔이란 가죽을 무두질한 후 피로 글씨를 적어서 보내는,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일본의 여중·여고생 사이에서 유행하던 편지 교환 문화예요.
당시 저는 잡지의 ‘친구 모집 코너’를 통해 같은 장르, 같은 캐릭터를 좋아하는 또래의 친구를 찾았는데,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였어요.
제가 전통적인 방법대로 가죽(?)에 쓴 편지를 보내자, 상대방은 행사에서 구한 듯한 최애가 그려진 ‘동인 편지지’에 편지를 써서 보냈어요.
그때 저는 처음으로 동인 굿즈라는 걸 보았고, 그런 물건을 살 수 있는 동인 즉매회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게다가 그 친구는 중학생임에도 행사에서 부스까지 연 적이 있다고 했죠. 이 사실은 친구의 연애 진도 소식보다도 더 충격적이었고, 저는 엄청난 질투를 했어요.
하지만 저 역시 지금 당신과 마찬가지로 깊은 산골의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종이책을 만들어서 도심의 행사에 참가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죠.
그렇다고 질투와 분노에 몸부림치다가 끝내지는 않았어요. 저는 벌떡 일어나 종이에 자를 대고 선을 긋고, 그림을 그리고, 마을에 하나밖에 없던 편의점에서 복사해서 ‘나만의 동인 편지지’를 만들었거든요.
게다가 딱히 배부할 예정도 없으면서 그림과 근황을 적은 ‘페이퍼’를 만들어 그 친구에게만 보내기도 했죠.
한때는 ‘오글거리는 흑역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없는 걸 한탄하는 대신에 지금 있는 것으로 즐기려 했던 저 자신이 참 기특해요.
당신도 못 가는 행사에 질투하는 대신,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해서 행사에 맞춰서 온라인 참가를 선언하고 작품을 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동료를 만들고 싶다면 온라인 참가자들을 모아보는 것도 좋겠죠. 어차피 잘 안 팔릴 거라며 주저하지 말고, 디지털 다운로드 판매부터 시도해 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오히려 가지 않는 게 나을 때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행사에 직접 가는 것이고, 그걸 대체할 만한 방법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은 행사 자체를 시야에서 멀리하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중학생 때 저는 ‘어른이 되면 나도 빅사이트 가서 책을 팔 거야’라며, 마치 고향 떠나 성공하겠다는 농촌 청년처럼 꿈을 키웠어요.
당신도 지금은 가정 환경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갈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막상 갈 수 있는 나이가 되고도 한동안 참가하지 않았고, 실제로 처음 가 본 건 서른이 넘어서였어요. 앞으로 오프라인 행사는 점점 참가자의 연령대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몇 살이든 늦었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 지금 못 가는 현실에 절망하기보다는, 언젠가 갈 수 있는 미래를 생각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가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얼마 전 아이스크림 ‘비에네타’의 단종 소식이 발표되었어요.
어린 시절 동경하던 고급 아이스크림이었지만, 결국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하고 끝났죠. 이게 너무 아쉽고 후회되긴 하는데, ‘차라리 동경하는 상태로 남아 있어서 다행일지도 몰라’ 싶기도 해요.
너무 기대가 컸던 탓에, 막상 먹어 보면 실망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당신도 행사에 직접 가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곳에 대한 환상을 너무 키웠을 수도 있어요.
물론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아무도 부스를 찾아오지 않거나, 팔로워끼리 모이는 애프터에 자기만 초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깨닫는 등, 마음에 상처를 입고 참가를 후회하게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상담 내용을 보니, 저와 마찬가지로 자기 평가가 낮고 부정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경우, 오프라인 행사보다는 온라인이 더 적합할 수도 있죠.
저도 결국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모두 경험하고 나서야 ‘이렇게 현실에서는 존재감도 없는 촌구석 외톨이도 인터넷에서는 작품을 올리고 칭찬을 받을 수 있다니 온라인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 후로는 도시에 대한 동경도 사라졌고, 일 때문에 상경하더라도 끝나면 바로 집에 돌아가요.
당신이 저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런 결론이 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 시리즈가 단행본으로!
인기 시리즈 ‘카레자와 카오루의 창작 상담’이 ‘오타쿠의 즐거운 창작론’(문학춘추 출판)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화 되었습니다!
‘원작을 무시한 2차 창작이 걱정돼요’, ‘마이너 장르라 독자들이 별로 없어요’, ‘40대면 동인 행사 그만둬야 할까요?’, ‘최애를 죽이고 마는 모순과 고뇌’ 등 인기 상담은 물론 신작에 대한 고민까지 담겨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항상 즐겁게 잘 읽고 있어요.
제 고민은 행사에 갈 수 없다는 점이에요. 저는 2차 창작 소설을 쓰고 있는데, 집안 사정 때문에 반나절 이상 집을 비울 수 없고, 지방에 살아서 장르 관련 행사는 아예 참석할 수 없어요.
최근에는 라이브나 무대 공연 같은 경우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만족하려고 하고 있지만, 동인 행사는 그럴 수 없잖아요. 팔로워들이 행사장에서 즐겁게 교류하고 친해지는 모습, 특히 저보다 나중에 이 장르에 입문한 사람들이 점점 행사를 다니며 책을 내고, SNS에 행사 후기를 올리는 걸 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쉬움과 질투가 밀려와요.
제가 인터넷에 공개한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제법 있긴 하지만, 동인지를 만들어 온라인 판매만 한다고 해도, 만화책이라면 모를까 소설책은 손에 쥐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도 없겠죠.
집안 사정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행사 시즌이나 다음 행사 참가 신청 마감일이 다가올 때마다 우울해져서 창작도 즐겁게 할 수 없어요. 이런 기분을 어떻게 다잡으면 좋을까요?